[밀물썰물] 졸업식 축사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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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앞다퉈 꽃망울을 터트리는 이때, 대학 캠퍼스엔 졸업식이 한창이다. 가족,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느라 졸업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심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졸업식에서 듣는 촌철살인의 축사는 격려가 되기도 하고 때론 인생의 길잡이가 된다. 그래서 졸업식의 명축사는 캠퍼스 내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에도 큰 울림을 준다. 심지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한다.

2000년대 이후 명축사 중에서는 2005년 스티브 잡스가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이 많이 거론된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1년이 지날 무렵 행한 연설에서 잡스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면서 맺음말로 “항상 갈구하라, 늘 우직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남겨 세계인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졸업식 축사에 늘 교훈적이고 근엄한 당부의 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뜻밖의 역설적인 말이 오히려 청중에게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2015년 5월 미국 뉴욕대 티시예술대의 졸업식에서 축사한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를 꼽을 수 있겠다. 드니로는 축사를 시작하자마자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망했습니다(You made it, And you’re fucked)”라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언뜻 욕설로도 들릴 수 있었지만 예술인의 신산한 인생을 직설적인 어법으로 표현해 당시 미국 언론으로부터 “올해 최고의 졸업식 축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졸업식 축사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하나는 지난 14일 모교인 국민대 졸업식에서 축사한 가수 이효리 씨의 경우다. 근엄함 대신 특유의 유쾌한 모습으로 “여러분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사십시오”라고 말한 이 씨는 이어 “그냥 인생은 ‘독고다이’다”라며 스스로 자기 삶을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이 씨는 축사만 한 것이 아니라 즉석 공연까지 벌여 졸업식을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이틀 뒤인 16일 진행된 카이스트 졸업식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식장에서 카이스트 졸업생이 대통령의 연설 도중 “연구개발 예산을 복원하라”는 취지로 말하는 순간 경호원에 의해 끌려 나가면서 식장 분위기가 싸해졌다. 졸업식 축사 하나로 두 곳의 식장 분위기가 완전히 갈렸다. 손뼉 치고 환호하는 축제장 같은 졸업식을 원한다면 앞으로 ‘높으신 분’의 축사는 정중히 사양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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