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우리는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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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이달 초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이 주목을 받았다.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의 한국 여행기였다. 영상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유교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가운데 둘의 단점만을 취해 불행하다고 한다. 대략 권위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에 물질만능주의와 각자도생 문화가 합쳐졌다는 이야기인데, 적기만 해도 숨 막히는 진단이다.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개인적인 관심으로는 서양철학사에서 계몽이 지니는 의미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계몽은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행위로 시작하여 권위의 종말을 가져왔다. 무엇이든지 질문과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 혹은 규정적 질서였던 권위의 대척점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역량이 서게 된다. 이러한 권위와 역량의 긴장관계는 주어진 것과 선택하는 것, 본성과 환경, 법칙과 행위자성 등의 대립과 나란하며 근대적 가치관은 당연하게도 후자들을 향해 있다.

“유교·자본주의 단점만 결합”

권위주의·물질만능주의 겹친

한국 사회에 대한 아픈 비판

부단의 혁신 요구되는 시대

기존 질서·한계 넘어서려면

진정한 자유 먼저 고민해야

단언컨대 엄청난 진보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 본성, 법칙에 구속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에 신분제를 없애고 평등한 존재로 나아가고, 누구나 자아실현을 이루고 자기계발을 통해 성장하고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 결과 개인의 자유의지와 역량을 전제로 하여 근대사회를 떠받치는 두 체제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세우고 국민이 스스로 대표자를 뽑고 정치에 참여하고 또한 누구나 노력하면 부를 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공유한다.

하지만 권위를 부서뜨리는 경험이 없는 상태로 근대화를 이뤘다면 제도와 의식의 기초가 되는 자유의 정신을 충분히 향유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질서에 순종하는 덕목을 중시해 온 문화였기 때문에 그러한 맥락에서 뿌리내린 근대식 제도들은 체제의 취지와는 다른 결을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자신이 성군이길 꿈꾸는 대통령이나 그와 같은 대통령을 바라는 것은 정치에서 권위를 지운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의 자리를 대통령의 이름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은 새로운 권위로 등극했다.

이것이 안타깝게도 유교와 자본주의의 단점만을 취한 대한민국 근대화의 결과일까. 그렇게 책망하기엔 간단하진 않은 것 같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한 권위는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식과 기억에 남아있고 사회에 스며든 권위가 어떻게 단숨에 잊힐 수 있겠는가. 어쩌면 권위로부터 인간이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 다수결의 투표 결과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들 역시 계몽 이후 인류가 합의한 새로운 권위다. 인간은 언제나 권위와 자유의지 중간 어디에 서게 된다. 우리는 주어진 것에 순응만 하지도 않고 모든 걸 내 뜻대로 맞춰 살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여건은 조금 특수하고 근대적 세계관이 가장 두드러진다. 원주민을 몰아낸 신대륙에서 역사와 전통이 부재했던 미국은, 외교관 토크빌의 관찰처럼, 처음부터 자치(自治)를 경험하며 권위에 복종하지 않았던 문화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고안했다. 그리고 기축통화로 역할하는 달러 덕분에 경제적 속박에서도 자유롭다. 필요적 욕구가 자연의 섭리 아래 주어진 구속이라면 자본주의는 자유의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욕망과 수요로 지탱된다. 보통은 주머니 사정에 맞게 씀씀이를 절제해야 하지만 미국은 달러를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쉽게 부채를 자산화하고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역사상 권위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국가처럼 보이는 미국에서는 끊임없는 혁신이 펼쳐진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인류의 필요에 맞게 지구환경을 변화시키는 공학 기술인 지구공학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신인류를 인간 손에서 탄생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로 이것의 동기를 단순히 돈벌이로만 생각한다면 오해다. 그들의 비전에는 어떠한 질서와 한계에도 구속되지 않는 인간의 자유와 능력을 실험하고 실현하려는 강력한 도전정신이 담겨있다.

그러나 인류가 얼마만큼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지와 그 방향이 옳을지는 당장에 알 수 없고 예외적인 환경의 미국식 자유주의를 무조건 예찬하기엔 신중해진다. 또한 계몽의 당위성을 주장함도 아니다. 다만 국가는 이미 근대화를 진행하여 근대식 체계를 갖추었고 체계는 근대사상에서 발아했기에 그 출발의 계몽정신을 되돌아보고 나면 형태만 달라졌을 뿐 새로운 권위들에 억압받는 한국 사회가 보인다. 더구나 강력한 자유와 혁신으로 추동하는 미국식 제도를 따라가면서 체계와 세계관에서 불화가 일어나곤 하는 사회에는 권위와 질서, 한계를 무너뜨리는 진정한 자유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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