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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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1945~2021)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지만

고금의 베스트셀러 아닐까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달,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데

괴로워하라, 비수 댄 듯

암흑의 밑이 투둑, 타개져

천천히 붉게 머리 내밀 때까지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놓은

대답이 두둥실 만월이다.

-시집 〈쉬!〉(2006) 중에서


대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중천의 달이 빛을 흐뭇하게 뿌려준다. 달빛이 따뜻한 물결로 몸을 감싸주어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어머니 얼굴 같다. 대보름날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며 한 해의 풍년을 빌던 어머니의 마음이 저와 같았을까? 달은 이제나저제나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여신처럼 세상을 내려다본다. 아니 어머니가 하늘로 귀천한 뒤 자식들이 보고 싶어 지상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죽음마저 건너뛴 영혼으로 환하게 웃는 빛 한 덩어리!

그래서 달빛은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절절히 퍼져 내리는 소리가 되기에 ‘달북’이다. 그리운 마음에 쳐다보면 달은 어룽어룽 형상이 흔들리는데, 그 까닭은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 파장 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안 자식의 마음도 떨릴 터이니, 온 우주가 때아닌 공명을 일으킨다. 하여 달은 사랑의 울림이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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