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재판, 언제 끝나나요
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소장 접수부터 첫 변론에 6개월
잦은 인사 이동으로 연속성 떨어져
형사재판 소송 1년 초과는 기본
선진국, 재판 지연 보상법 도입
법관 수 절대적 부족도 지연 원인
일 잘하는 판사에 인센티브 줘야
“재판은 얼마나 걸리나요”라고 묻는 의뢰인에게 변호사가 뭐라 대답을 내놓기는 참 어려운 문제다. 사건의 난이도, 재판부의 성향과 사건 수, 변호사의 성실성, 상대 변호사의 대응에 따라 첫 재판이 열리고 선고가 되기까지 기간은 사건마다 천차만별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전국 변호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장을 접수하고 첫 변론기일이 잡히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는 답변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사실, 잊을 만하면 첫 재판이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연말이 다가오면 판사와 변호사들 사이에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2월 법관 인사이동을 앞두고 어떻게든 12월에는 변론을 종결해야 기존 재판부에서 무난하게 선고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12월 재판 후 담당 재판부가 변동되고 다음 재판은 3월이 되어서야 열리게 되고, 선고기일은 또다시 미뤄지기 마련이다. 재판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의뢰인을 생각하자면 어떻게든 연말에는 종결해야 하지만, 사건이 적체된 재판부가 선고가 힘들다고 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심지어 2월에 선고가 예정되어 있던 사건이 불과 며칠 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선고가 취소되고 직권으로 재판이 재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선고를 앞둔 당사자 입장에서는 왜 또 재판이 열리는지 그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고, 그렇게 재판이 지연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의 몫이 된다. 잦은 인사이동과 사무분담 변경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에는 법조인들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고, 1~2년마다 바뀌는 재판부의 사무분담 기간을 장기화하여, 업무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크다.
형사사건과 연계된 손해배상 청구 사건의 경우 판결이 선고되어야 가해자 재산에 집행이 가능한데, 형사재판이 지연되면서 선고가 되기까지 1년이 초과되는 것은 기본이다. 특히 이혼 사건은 기본 1년 이상이 소요되는데, 이혼 소송 중 홀로 미성년자를 양육하더라도 이혼이 확정되어야 한부모 가정의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재판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실상 한부모 가정이더라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상대방으로부터 사전양육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면 복지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헌법에도 명시된 '모든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말이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해외에서도 재판 지연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두고 있다. 독일은 ‘재판 지연 보상법’을 도입해서 부적절하게 장기간 지속된 소송절차로 불이익을 입은 국민에게 재판이 1개월 지연될 때마다 100유로씩을 보상하도록 했다. 일본은 법관 1명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단독제 법원인 ‘간이재판소’ 제도가 있다. 간이재판소에서는 당사자가 서면 없이 구두변론기일에 출석해 진술로 주장을 해서, 사건의 평균 심리 기간이 2~3개월 걸린다고 한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3월에 장기간 지연된 법원의 소송절차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소송 당사자가 상급법원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재판 지연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재판 지연의 가장 큰 원인에 대해서는 법관 수의 절대적 부족을 꼽는다. 현재 법관 정원은 2014년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시행으로 3214명이 된 뒤 10년째 그대로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판사 수는 2966명으로 1인당 처리하는 사건 수는 약 464건이라고 한다. 판사 한 명이 처리하는 사건 수가 독일보다 5배, 일본보다 3배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판사 한 명이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으면 재판 지연은 물론이고 그만큼 사건을 심도 있게 살펴보기도 힘들고, 결국 심리가 미진할 수밖에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300명 이상을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판사 수가 증원되면 재판 지연 문제가 일부 해소되겠지만, 판사 수가 많아진다고 그것만으로 해결이 될지는 의문이다. ‘법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가 있을 때는 사건처리 비율, 상소 비율, 법원 내 평판 등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인사에 반영되다 보니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고등부장 승진제도가 폐지되고 나서 법원 내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한다. 법조계에도 부는 ‘워라밸’ 열풍으로 법관의 사명심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이다. 일 잘하는 판사에게 주는 확실한 인센티브가 필요해 보인다.
한 부장판사가 퇴임을 앞두고 후배 판사들에게 “판사는 실력이 곧 친절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매년 2월에는 재판 선고가 많이 이루어지는데, 실력 있는 친절한 판사가 우대받는 풍토를 조성해서, 그 친절함이 국민이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는 친절한 판결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