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통도사 천왕문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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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玄關). 건물의 출입구를 가리키는 이 말은 불교에서 왔다. ‘깊고 오묘한(玄) 이치로 통하는 문의 빗장(關).’ 어째서 그런가. 바깥도 아니고 안도 아닌, 세속의 사바세계와 천상의 극락세계가 섞이고 나뉘는 경계라서다. 여기서 저기로 건너가고자 한다면 누추하고 미욱한 심사를 닦아야 한다. 열린 정신, 평정의 마음이 필요하단 얘기다. 그래서 사천왕(四天王)이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떡하니 버티고 섰다. 경내로 들어서려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그대들, 주어진 삶을 귀히 여겨 잘 경영하고 있느냐는 호통이다.

사천왕은 원래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부처에 귀의해 불법을 지키는 4인의 수호신이 된다. 신라로 건너온 사천왕은 호국의 신으로 나아간다. 〈삼국유사〉에 기록이 있다. ‘낭산 자락에 채색 비단으로 절을 짓고 명랑법사와 명승 12명이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쓰니 당나라 배가 모두 침몰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와 대립하던 문무왕이 바람과 파도를 부르는 특별한 주문을 지시했고 결국 당나라군의 침략 야욕을 꺾어 전란의 화를 피했다는 전말이다. 왕이 호국의 뜻으로 경주 낭산 자락에 지은 절이 사천왕사다. 2006년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 끝에 실제 절터의 전모가 드러났으니 허황된 스토리가 아니다.

이후로 우리나라 사찰에서 천연 거암에 부조해 웅장한 기상을 크게 높인 게 있는데 그게 사천왕상이다. 사천왕상은 사찰의 산문 어귀 천왕문에서도 만날 수 있다. 부릅뜬 눈, 거대한 몸집에 엽기적 포즈, 강렬한 색채. 일주문 지나 천왕문을 건너갈 즈음, 그 압도적 포스에 가슴 철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천왕문은 조선시대 사찰에 일주문-금강문-천왕문 세 개를 두는 ‘삼문 체계’가 성립하면서 나타난 사찰 건축물이라 한다.

최근 경남 양산 통도사의 천왕문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1713년 불에 타자 이듬해 중건한 것으로, 사찰 산문 중 건립 시기가 명확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내부에 봉안된 사천왕상도 1718년 제작했다는 당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동안 천왕문이 국가 문화재로 승격된 사례는 거의 없었는데, 문화재청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두루 인정한 것이다. 사천왕은 부처를 괴롭히다 마침내 깨우침에 이르렀다. 하여 아수라와 천국, 삶과 죽음 같은 경계 위의 존재다. 마음이 어지러워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면, 그 준열한 꾸짖음을 찾아가 볼 일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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