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느낌으로 사는지 알기나 해요?”
기꺼이 나의 죽음에 동의합니다 / 진 마모레오·조해나 슈넬러
캐나다 2016년 의료 조력 사망 허용
죽음에 관여한 의사가 만난 사람들
누군가에겐 삶의 희망이 될 수도
지난 5일 생을 마감한 드리스 판 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의 생전 모습이 총리의 모교인 라드바우드 대학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라드바우드 대학 제공
하필이면 왜 이런 책을 소개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법하다. 책을 고를 때는 대부분 개인의 취향이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개인이 처한 상황은 취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기꺼이 나의 죽음에 동의합니다>는 의료 조력 사망에 관한 책이다. ‘의료 조력 사망(Medical Assistance in Dying)’은 의료진과 약물의 도움을 통해 이르는 사망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존엄사’ 혹은 ‘안락사’라는 말이 통용된다. 캐나다는 2016년 말기 질환자나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 대한 의료 조력 사망을 합법화했다. 그 순간 45년 동안 가정의로 살아 온 진 마모레오는 인생 경로를 바꾸어 사람들의 죽음에 관여하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팔순의 나이로 지금도 활동 중인 그가 만난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 책의 사례 중에 실패담인 실라의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68세 여성 실라는 우아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실라는 자신이 앓고 있는 공격적인 형태의 치매가 심해지자 의료 조력 사망을 원했지만 딸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자녀들이 부모의 이런 선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보인다. 자신의 조력 사망에 동의할 정도로 인지 능력이 건재하다면 죽을 때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정말로 죽을 때가 된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는 능력이 사라진 후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후 딸은 직업까지 포기하면서 엄마를 돌보지만 상황은 갈수록 나빠져 뒤늦게 조력 사망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당사자가 동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너무 늦었다. “이 사람의 대부분은 우리 엄마가 아니에요.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긴 하지만, 우리 엄마는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더 이상 살아계시지 않아요.” 최선을 다한 결과인데 회한만이 가득했다.
66세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조의 경우는 해피엔딩으로 읽혔다. 조는 간절하게 죽기를 원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자살 시도도 실패하고, 조력 사망 요청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자신이 어떤 느낌으로 사는지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결국 요청이 승인되어 조가 계획한 일이 시행되는 날이 찾아왔다. 그의 병실에는 결혼식에서 신랑 들러리를 했던 다섯 명 모두, 그리고 전 부인들 중 한 명도 왔다. 간호사들은 그가 좋아하는 마리화나를 마지막으로 몇 모금 피울 수 있도록 도왔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의 문상을 온 이들이 모인 방의 분위기는 매우 활기찼다. 조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책을 고른 데는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가 최근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로 눈을 감았다는 소식도 영향을 미쳤다. 93세를 일기로 별세한 판 아흐트 전 총리와 70년 넘게 해로한 동갑내기 부인 둘 다 건강이 매우 좋지않았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다. 두 사람의 죽음은 집에서 의사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졌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의료 조력 사망의 경우다.
물론 의료 조력 사망이 무조건적인 본보기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자살 방조나 제도가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철저한 법 조항들도 명시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제도의 장점과 문제점, 그동안 이 제도가 보완되어 온 경과, 앞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등을 차분히 서술하고 있다. ‘죽음의 사신’이 되어 그들의 삶을 끝내는 시행자 역할을 하는 저자의 고민도 느껴진다. 의료 조력 사망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위안 혹은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캐나다는 2021년 의료 조력 사망을 불치병 환자까지 범위를 넓혔다. 다음달부터는 거식증,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도 의료 조력 사망이 허용되는 개정안이 시행된다. 현재 전 세계 12개 국가에서 의료 조력 사망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최근 60대 하반신 마비 환자의 헌법소원 청구를 받아들여 정식 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가 됐다. 우리보다 앞서 법률을 마련한 캐나다의 상황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진 마모레오,조해나 슈넬러 지음/김희정 옮김/위즈덤하우스/372쪽/1만 9800원.
<기꺼이 나의 죽음에 동의합니다>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