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탁구대표팀 가슴에 새긴 낯선 이름…27년 응원 90대 탁구광에 헌정한 감사패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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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 미국인 사업가 제리 월스키
1997년 김택수 선수와 첫 인연
한국팀 경기마다 찾아가 응원
부산대회서도 대표팀 거액 후원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남자대표팀 선수들의 유니폼 오른쪽 가슴에 ‘미스터 제리 월스키(Mr. Jerry Wartski)’란 문구가 선명하다. 이대진 기자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남자대표팀 선수들의 유니폼 오른쪽 가슴에 ‘미스터 제리 월스키(Mr. Jerry Wartski)’란 문구가 선명하다. 이대진 기자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을 후원한 제리 월스키(오른쪽) 씨. 부산세계탁구선수권 조직위 제공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을 후원한 제리 월스키(오른쪽) 씨. 부산세계탁구선수권 조직위 제공

연일 열전이 펼쳐지는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현장에서 한국 탁구대표팀과 한 외국인 노신사의 인연이 알려져 대회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사연이 알려진 건 남녀대표팀 유니폼에 새겨진 ‘낯선 이름’이 경기를 보던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기 때문. 한국 선수들의 오른쪽 가슴팍에는 대표팀 후원사인 세아철강·신한금융그룹·피치스 등 기업명과 함께 ‘미스터 제리 월스키(Mr. Jerry Wartski)’란 문구가 선명히 박혀 있다.

이름의 주인공 제리 월스키(93) 씨는 22일 오후 대회장인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한국인 부인 박수연(68) 씨의 부축을 받으며 <부산일보> 취재진을 맞았다.

유대인 출신인 월스키 씨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호텔·부동산 사업가다. 1939년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갇혀 있을 당시 처음 친 탁구에 묘미를 느낀 뒤 평생 탁구를 즐겨왔다. 어느새 구순을 훌쩍 넘겨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됐지만, 아직도 이틀이 넘는 장거리 비행을 마치고 나서도 가장 먼저 찾는 일이 탁구일 정도로 ‘탁구광’이다.

미국인인 월스키 씨가 한국 탁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7년 전인 1997년, US오픈 때다. 당시 김택수 선수(현 부산세계탁구선수권 조직위 사무총장)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보고 열렬한 팬이 된 이후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일본 세계선수권 등 각종 프로투어 대회 때마다 경기장을 찾아 한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그는 1년 일정을 국제탁구연맹(ITTF) 스케줄에 맞춰 짤 정도로 한국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라면 빼놓지 않고 찾아다녔다.

김택수 선수와의 인연은 특히나 두터웠다. 월스키 씨는 “김택수 감독은 나와 함께 하는 모든 경기를 이겨서 나를 두고 ‘행운의 마스코트’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한국 탁구에 대한 직간접적 후원은 30년 가까이 계속 해왔지만 한국 대표팀 유니폼에 본인의 이름을 넣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대한탁구협회를 통해 이번 부산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에 거액을 후원했다. 선수들 오른쪽 가슴팍에 새겨진 그의 이름은 지난 27년 동안 한국 탁구와 맺어온 인연의 증표이자, 한국 탁구계가 그에게 헌정하는 감사패인 셈이다. 월스키 씨는 “지난 27년 동안 한국 탁구와 항상 행복하고 기쁜 순간을 함께했다. 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탁구대표팀을 응원하러 전 세계를 다녔지만 이번 대회는 그에게도 남다르다. 부인 박 씨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대한민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며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대회인 만큼 회장님과 이야기해 특별히 이번 대회에 후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으로 유니폼에 ‘미스터 제리 월스키’ 이름을 새긴 것도 한국 대표팀이 처음 홈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을 후원한 제리 월스키(왼쪽) 씨와 한국 남자대표팀. 부산세계탁구선수권 조직위 제공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을 후원한 제리 월스키(왼쪽) 씨와 한국 남자대표팀. 부산세계탁구선수권 조직위 제공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을 후원한 제리 월스키(왼쪽) 씨가 벡스코 메인경기장에서 한국팀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부산세계탁구선수권 조직위 제공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을 후원한 제리 월스키(왼쪽) 씨가 벡스코 메인경기장에서 한국팀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부산세계탁구선수권 조직위 제공

월스키 씨는 이번 부산 대회에서도 매일 벡스코 특설경기장을 찾아, 한국 대표팀 경기를 빼놓지 않고 VIP석에서 관람하고 있다. 대표팀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고자 일부러 선수들 숙소와 같은 호텔을 잡기도 했다. 호텔에서 한국 선수들과 무슨 대화를 나눴냐고 묻자 그는 “선수들이 영어가 능숙하진 않아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고 웃으면서도 “같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전했다.

인터뷰 말미, 월스키 씨는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해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한국 남녀대표팀 선수들에게 작지만 강한 어조로 응원을 전했다. “모두 굿럭입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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