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일본’ K콘텐츠, 한·일 양국서 큰 인기
한국정서 담은 ‘Eye Love You'
K-콘텐츠 친숙한 젊은 층 호응
OTT 발달로 협업 더 늘어날 듯
일본 TBS 드라마 'Eye love you'가 일본 젊은 시청자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다. ‘Eye Love you’ 포스터. TBS 제공
#장면 1
앞을 보지 못하고 바쁘게 걸어가던 남자와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여자가 부딪힌다. 남자는 자신과 부딪혀 넘어지는 여자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쥔다. 정신을 차려보니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있다. 눈을 깜빡이며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장면 2
여자에게 호감을 느낀 남자는 그녀에게 밥을 먹자고 제안한다. “면이 좋아요 밥이 좋아요?” “볶음밥, 오므라이스 좋아해요?” 남자의 질문 세례에 여자가 다 좋아한다고 대답하자 그는 조심스레 한 마디를 덧붙인다. “저는 좋아해요?”
일본 방송국이 만든 ‘K-멜로드라마’가 일본을 강타한다. 과거 한국에서 제작된 드라마가 일본에 수출되는 것을 넘어 일본 내에서 한국의 분위기를 살린 드라마를 직접 제작해 방영하는 것이다. 최근 드라마와 예능 등 일본발 ‘K-콘텐츠’가 등장하는 배경에는 한국 문화에 익숙한 젊은 층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의 민영 방송사 TBS가 제작한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는 지난달 일본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해 화제의 드라마로 떠올랐다. 지난달 첫 방송을 시작한 이 드라마는 눈을 마주치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여자 주인공 ‘유리’가 언어의 장벽으로 속마음을 읽지 못하는 한국인 ‘태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았다. 유리 역에는 일본 배우 니카이도 후미가, 태오 역에는 한국 배우 채종협이 출연했다.
태오는 한국 드라마에서 등장하던 여러 ‘스윗남’ 이미지를 하나로 합쳐놓은 인물이다. 잘생긴 외모에 자상함까지 갖췄지만 스윗함이 얼기설기 뭉쳐진 탓에 국내 시청자가 보기에는 과한 면이 없지 않다. 요리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셀카’와 함께 수십 통의 메시지를 아침마다 여성에게 보내거나 “오다 주웠다”며 꽃다발을 건네는 모습이 그렇다. 흘러넘치는 스윗함으로 시청자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할 것 같은 인물인 태오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어, 주연 배우 채종협에게는 ‘욘사마’(배용준), ‘근짱’(장근석)에 이은 ‘횹사마’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순두부찌개, 비빔밥 등 한식이 등장하고 한국 배우가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본 드라마가 흥행하는 배경에는 일본 젊은 층이 한국의 문화를 친숙하게 여기는 것과 관련 있다. OTT 같은 플랫폼을 통해 한국 콘텐츠를 쉽게 접하다 보니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높아졌다. ‘아이 러브 유’ 제작진은 드라마 제작 배경에 대해 “한국 청년과의 연애에 관심 있는 일본 청년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드라마를 자주 시청한다는 일본인 미사키(26) 씨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 일본 남성보다 한국 남성이 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여성을 잘 챙겨주는 것처럼 보인다”며 “그런 면에서 한국인이 등장하는 로맨스물이 흥미롭고, 방송 직후 일본 SNS에서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시물이 많이 올라오는 걸 보면 인기는 높은 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만든 K-콘텐츠 바람은 드라마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K드라마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라는 제목의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이 드라마를 촬영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연애 프로그램 ‘하트시그널’의 일본판인 ‘하트시그널 재팬’에서는 일본 여성이 한국 남성과 서울에서 지내며 호감을 느끼는 과정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최근 글로벌 플랫폼의 발달로 한 국가의 고유한 문화에 다른 국가의 문화가 섞이는 이른바 ‘문화협업’ 사례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글로벌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국적이나 언어가 달라도 콘텐츠를 함께 소비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과거에는 한국 배우가 단순히 일본 드라마에 출연하는 물리적 결합에서 그쳤지만 ‘아이 러브 유’ 같은 작품은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가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작품”이라며 “두 문화가 합쳐지며 일종의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