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거꾸로 간다] 노인을 위한 사회적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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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오베’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외로운 남자이다. 은퇴도 했고 까칠하며 괴팍한 노인인 그가 동네 공동체의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주며 정을 나누는 과정에서 차가웠던 삶이 이웃 관계를 통해 다시 따뜻하게 데워지게 된다. 스웨덴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2년 전 톰 행크스 주연의 ‘오토라는 남자’로 주인공 이름이 바뀐 채 미국 영화로도 개봉됐다.

얼마 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독거노인 비율은 21.1%로 더욱 증가했다. 또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을 곳이 없다는 사람의 비율은 33%에 달하고, 특히 60세 이상 고령자는 40.7%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이 비율은 OECD 38개국 중 가장 높다.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35위인데, 특히 노인이 가장 낮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연령대별 삶의 만족도가 ‘U자’형인데, 우리는 노인이 될수록 유독 낮아진다. 한국의 십만 명당 자살률은 24.1명으로, 오랫동안 세계 1위이다. 이 역시 노인이 될수록 더욱 높은 실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고립에 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79배 정도 더 많은 경제적 비용을 유발시킨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5세에 시작된 히키코모리 1인당 약 16억 원의 지원비용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영국 정부는 외로움에 따른 비용을 51조 원으로 추산했으며, WHO(새계보건기구)는 불안과 우울로 인해 약 1200조 원(1조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개인 삶의 황폐화와 고비용까지 예상되는 외로움에 선도적으로 정책 대처를 한 나라는 영국이다. 2019년 외로움부를 신설하고 관련 전략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여러 정책 중 눈에 띄는 것은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이다. 1차 의료기관에 오는 환자 중 지역사회 활동과 서비스 참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의학적 처방보다 사회적 처방을 해 환자의 건강과 웰빙을 개선한다. 이는 의료의 생물·심리·사회적 통합 모델에 기초해있다.

사회적 처방 대상자들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돕는 전문가인 링크 워커(Link Worker)들은 올해까지 2년간 최소 90만 명 이상에게 혜택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적 처방은 개인-가족-국가의 복지 틀에서 가족의 역할은 이미 해체되고 있고, 국가의 역할만으로도 불가능해 지역사회, 비영리기관, 자원봉사단체, 일반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다중적 관계로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시도다.

우리나라는 노인의 외로움이 가장 심한 나라이며, 부산 역시 인구 10만 명당 고독사 발생 비율 1위로 전국에서 가장 고독의 빨간불이 강하게 켜져 있는 지역이다. 고립 노인 ‘오베’의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하는 데는 역시 사회적 처방이 직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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