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회사 상사 대하듯 해 보세요”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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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 / 김웅철

10년 앞선 고령사회 리포트
상속제도 전환 타산지석으로
속도 늦춰 함께하는 사회를

주간보호센터에서 교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일본 ‘어른 학교 데이케어센터’ 제공 주간보호센터에서 교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일본 ‘어른 학교 데이케어센터’ 제공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일본 소설이 나왔을 때 제목만 듣고도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소설가가 썼다면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도 출판사에 항의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고령화는 축복일까 재앙일까? 이 소설을 쓴 소설가 가키야 미우는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에서 “건강한 몸과 어느 정도의 재력이 있다면 축복이겠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장수는 고난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지난해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는 우울한 소식을 접하며 ‘10년 앞선 고령사회 리포트(부제)’를 펼쳤다.

일본의 한 지방 도시에는 버스가 오지 않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아이치현 도요하시시의 치매카페 근처에 세워진 가짜 버스정류장 이야기다. 치매 노인들은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어 한다. 버스 같은 공공 교통기관을 이용하려고 배회하는 이유다. 그런 노인을 버스정류장으로 안내하고, 5분 정도 지난 후 버스가 늦어지는 것 같으니 안에서 커피 한잔하자고 말한다. 그러면 얌전하게 요양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이처럼 치매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치매카페가 있다. 일본 정부도 2025년까지 일본 전국 곳곳(市·町·村)에 치매카페를 설치할 계획이다. 요즘엔 특히 스타벅스 치매카페가 인기가 있다고 한다. 기존 치매카페는 왠지 부담스러운 반면에 스타벅스는 보통 카페를 즐긴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치매카페 직원들은 치매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치매 서포터즈 자격증을 취득한다. 괜히 스타벅스가 아니다.

사람만 고령화되는 게 아니라 반려견의 고령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일본 반려견 5마리 중 3마리가 노견이라고 한다. 문제는 반려견도 나이를 먹으면 치매가 발병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의 해결사로 ‘노견 홈’이 등장했다. 반려견 요양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노견 홈에는 동물간호사나 노견 전문 동물요양사가 상주하면서 늙은 반려견을 24시간 간병, 수발한다. 면회는 자유롭고 반려견이 생활하는 모습을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부 노견 홈은 시설 간병에서 한발 나아가 방문 간병 서비스까지 하고 있다. 조만간 한국에도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2018년 일본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민법 개정안은 유산 상속 조항이 대폭 개정됐다. 일본의 새 민법은 배우자가 현재 사는 주택에서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를 신설하는 등 유산 상속 권리의 우선순위가 자녀에서 배우자로 옮아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상속인 이외 가족의 간병 역할을 법이 인정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했다. 초고령사회 일본의 상속제도의 전환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에는 ‘손자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있다. 경제력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갑을 열겠다는 의도다. ‘식스 포켓’라는 용어는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부모, 친조부모, 외조부모 등 6명이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책을 읽고 시니어 비즈니스의 힌트를 얻어가는 독자도 있을 법하다. 일본의 한 시니어 비즈니스 전문가는 ‘실버’나 ‘시니어’ 같은 고령자를 특정하는 용어의 사용이 실패를 낳은 사례가 많다고 따끔하게 지적한다. 시니어 시장은 다양한 마이크로 시장의 집합체다. 이 시장에 매스(mass) 마케팅은 효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퇴직 후에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와 ‘은퇴 후 부부 갈등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는 만국의 중년 이후 남성들 공통 관심사가 아닐까 싶다. 고령자 인력파견회사로 유명한 고레이샤는 ‘평생현역 여섯 가지 실천 강령’을 제시했다. 첫 번째가 ‘과거의 직책을 들어 잘난 체하지 않는다’, 여섯 번째가 ‘고개는 숙이기 위해 있는 것이다’라니….

일본의 전문가는 남편들이 은퇴 후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이야기부터 꺼낸다. 그리고 나서 ‘아내를 회사 상사 대하듯 하면 된다’고 허를 찌른다. 우리도 일본처럼 속도를 늦춰 고령자와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김웅철 지음/매일경제신문사/272쪽/1만 8000원. 박종호 기자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 표지.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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