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헬리콥터 머니’의 반면교사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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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일본은행? / 니시노 도모히코

양적완화 ‘행동대장’ 된 일은 통해
일본 경제 '잃어버린 30년' 고찰
현 한국 상황에도 큰 시사점 제시

<침몰하는 일본은행?> 표지. <침몰하는 일본은행?> 표지.

<침몰하는 일본은행?>을 읽는 내내 머리말을 거듭 돌아봤다. 다큐멘터리로 알고 집어들었는데, 소설이 아닌가 싶어서. 머리말은 ‘일본금융정책사(史)’라고 못박고 있지만, 소설만큼 스토리가 탄탄하다. 일본 경제소설의 거장 다카스기 료의 대표작 <금융부식열도>가 떠오른다. <금융부식열도>는 소설이지만, 다큐멘터리 같다. 섬세한 묘사에 박진감이 넘친다. 한 권은 실화를 기록했고, 한 권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러고 보니, 두 책의 저자 모두 기자 출신이다.

<침몰하는 일본은행?>의 원제는 <日銀漂流>. 번역하면 ‘표류하는 일본은행’ 정도다.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표류)과 가라앉는 것(침몰)은 전혀 다르다. 출판사도 원제보다 ‘과격한 단어’ 사용이 켕겼는지 제목 끝에 없던 물음표를 달았다. 굳이 제목을 갖고 트집 잡는 것은 ‘표류’가 책 전반의 내용에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책은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을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표류를 통해 바라본다. 이야기는 1998년 일본은행법의 개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새 법은 정부에 종속됐던 금융정책의 결정권을 일은의 전결사항으로 바꿨다. 그러나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정부는 오히려 ‘정책 공조’라는 명목으로 일은을 압박한다. 국민의 원성이 두려운 정부는 대규모 양적완화와 재정지출로 경기부양을 노리지만, 시장에선 약효가 듣질 않고 약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진다. 그리고 아베노믹스 시절에 이르러 그 절정을 맞는데, 당시 일은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펼치기 위해 대량의 국채는 물론이고 상장지수펀드(ETF)까지 매입한다. 그 결과 아베노믹스는 막대한 공공부채라는 시한폭탄을 남긴다. 지난해 6월 기준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224%)은 세계 최고다.

법 개정으로 ‘독립 만세’를 외쳤건만 결국 정부 양적완화 정책의 첨병이 된 일은의 이야기가 결코 낯설지만은 않다. 이 과정을 생생히 묘사하기 위해 저자는 여러 명의 총리와 재무장관, 일본은행 총재에서부터 실무자에 이르는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공개, 비공개 내부자료와 개인 일기까지 망라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20여 년의 취재노트를 바탕으로 감춰진 역사의 조각을 메우며 진실에 다가간 끈기에 고개가 숙여진다.

저자는 가급적 “논평하는 것은 삼가고, 그간의 사실을 시계열로 쫓아가는 데 전념”했다. 기자답게 객관적으로(다른 의미로는 무미건조하게) 기록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이런 점들이 일본경제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부족한 한국의 독자 입장에선 종합적 이해를 어렵게 한다. 친절한 해설이 그리워진다. 물론 저자의 탓은 아니다. 집필 당시 외국의 독자까지 고려할 순 없었을 터. 그런 점에서 번역 출간 때 좀더 상세하게 주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가급적 각주는 각 페이지 아래에 달아주었으면 좋겠다. 매번 주(註)를 찾아 책 마지막 부분을 오가는 것만큼 번거로운 일이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한국 역시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기록적인 양적완화를 시행했고, 지금 그 숙제를 풀어가느라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다. 제대로 된 금융정책이 절실하다. 물론 어려운 시기, 재정지출을 늘이는 것이 마냥 악수(惡手)는 아니다. 다만, 그것이 경제적 고려보다 정무적 고려가 앞선 것은 아닌지, 우리는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앞선 위기의 순간에서 일은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했는지, 그 실패담을 면밀하게 들여다 보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다. 니시노 도모히코 지음/한승동·이상 옮김/가갸날/374쪽/2만 2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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