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고학 그리고 ‘절대’와 ‘선입견’
김재현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전공 교수
김재현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전공 교수
고고학에는 금기 아닌 금기어가 있다. ‘절대’라는 단어다. 이 시대는 이런 돌칼이 절대 나올 리 없다든가, 이 무덤에서 그렇게 많은 토기가 절대 나올 리 없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인골이 전공인 나는 원주에서 백제시대 유적을 조사한 적이 있다. 길이 1m도 안되는 작은 독무덤에서 세 사람 유골이 나왔으며, 또 다른 조그마한 백제 항아리 안에는 두 사람분 머리만 들어있는 것도 있었다. 세 사람이 들어 있던 독무덤은 남자 2명과 여자 1명으로 확인됐고, 머리만 있는 항아리는 남녀 1개체씩 있었는데, 남자는 분명 바로 머리가 잘려 넣은 것인데 비해 여성은 남성이 죽기 훨씬 전 이미 백골이 된 상태의 것이었다.
이미 백골이 된 인물을 굳이 머리만 챙겨 남자와 같이 넣었다는 사실은 절대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또 다른 독무덤 역시 남자 1명에 여자 2명도 아니고,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하나의 작은 독무덤에 들어간 특이한 상황이라 예측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세 사람이 함께 묻힌 상황에 대한 해석도 그렇지만 한 남자의 머리만 넣은 항아리 속에 왜 이미 전에 죽은 여자의, 그것도 머리(두개골)만 같이 넣어 매장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도무지 해석이 쉽지 않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오는 일이다. 이미 그렇게 나왔는데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나름 분석은 있었지만, 이 부분 해석은 여러분 상상에 한번 맡겨 볼까 한다.
그리고 고고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 가장 많은 변화는 막연한 ‘선입견’에 대한 파괴다. 고고학은 진리가 아닌 진실을 알기 위한 학문이다. 그 진실의 모습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신석기시대가 무리사회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한 사회(군집사회)라고 배워 왔다. 그래서인지 가덕도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장항유적은 한 명씩 묻힌 사람이 무덤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신석기시대인 안도유적은 그렇지 않았다. 현재와 별반 다를 것이 없게 한 쌍의 남녀가 나란히 누워 있었고 더욱이 여성은 아주 자연스럽게 남성의 왼손 위로 오른손을 올리고 있었다. 여자 손목에는 조개로 정성스레 만든 팔찌까지 하고서 말이다.
처음 이 광경을 접했을 때는 깜짝 놀랐었다. 물론 인골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놀란 것이다. 개인이나 결혼이라는 개념이 없다던 선사시대에 남녀가 이렇게 다정히 묻혀 있는 것을 볼 것이란 생각은 전혀 못 했기 때문이었다. 무리를 지어 남녀에 상관없이 한 사람씩 묻히던 빠른 시기의 신석기시대(장항유적)와 달리, 늦은 시기 신석기시대(안도유적)에는 마치 현재의 부부묘처럼 남녀 한 쌍을 나란히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의 가죽을 걸치고 몽둥이를 들고 들판을 뛰어다니는 선사인의 선입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 이들도 어떤 연유에서 죽은 남녀를 이렇게 나란히 묻어줄 주 아는 로맨틱한 사람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선사인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가 생겼다.
강원도 평창에서 연락이 왔었다. 고인돌을 발굴했는데 인골이 나왔으니 봐달라는 것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인골만이 아니라 청동으로 만든 칼도 같이 매장돼 있어 아무래도 주인공이 남성인 듯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인골을 분석한 결과 20대 여성으로 밝혀졌다. 청동기시대 칼을 갖고 매장된 주인공은 남자일 것이라는 선입견, 즉 편견이 깨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나 역시 인골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유물만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선입견을 품고 살았을지 모른다. 삼국시대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칼을 가진 여성. 여성이 금장식, 남성이 은장식을 하고 있는 사례. 칼과 말안장, 마구 등과 함께 매장된 여자 주인공. 가야 왕 무덤으로 알려져 왔으나 발굴에서 여자와 어린이들만 나온 무덤. 이 같은 여러 발굴 경험은 고대부터 있어 왔다는 남성 중심 사회, 부계 중심 사회에 대한 ‘절대’와 ‘선입견’을 깨뜨려줬다.
‘절대’를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는 고고학, ‘선입견’을 갖고 발굴해서는 안 되는 고고학, 그래서 나는 고고학에 반했고 인골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곳이나 또 누구에게나 선입견이나 편견은 존재한다. 물론 그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단정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절대’나 ‘선입견’과 같은 단어를 지워버린 고고학자가 한번 돼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