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일사각오' 정신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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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만 있는 ‘신념’이란 놈, 실로 대단하다. 세상 만물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 내기도 하고, 반대로 모든 존재를 폐허로 뒤엎기도 한다. 철학적 이념도 종교적 소신도 일종의 신념이고, 사회적 이상도 민족주의 정신도 신념의 자식이다. 신념은 세상에 하나뿐인 목숨조차 초개와 같이 버리게 한다. 특히 종교적 신념에서 사례를 자주 본다. 그 힘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마음이, 믿음이 무엇이길래 육체의 소멸까지 마다하지 않는가 말이다.

경남 창원 진해 웅천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주기철(1897~1944) 목사의 생애도 그렇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 7년간의 수감, 잔혹한 고문 끝에 옥중에서 순국한 선생의 일생은 인간 신념의 빛나는 경지다. 당시 다수의 개신교 목사들은 신사 참배를 우상 숭배가 아닌 국가 의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선생이 보기에, 신사 참배 강요는 종교 박해가 아닌 민족 말살이었다. 선생의 저항정신이 3·1운동 동참과 ‘일사각오’(一死覺悟·한번 죽기를 각오함) 설교로 집약된 이유다.

주기철 목사의 신앙적 이력은 조사(전도사)로 사역한 양산읍교회에서 시작한다. 첫 목사 부임지는 부산 초량교회였다. 철두철미한 원칙으로 조직을 정비했고 유치원을 설립해 교육에 힘썼다는 전언이 남아 있다. 이후 마산, 평양으로 옮긴 목회의 터전은 조선 교회의 마지막 그루터기가 되었다. 결국 선생에게 신앙적 신념과 민족적 자존은 한 몸이었다. ‘다섯 가지 나의 기도’가 정신성의 핵심이다. 그 첫 번째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네 번째가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이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읍성 옆에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있다. 2015년 문을 연 기념관에 가면 죽을 각오로 사명을 완수하고자 했던 선생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최근에는 기념관 인근에 생가를 복원해 목사의 삶에 가려진 독립운동 업적을 살필 수 있는 전시관도 개관했다.

물질이 숭상되는 시대, 신념은 지금 폄하를 면치 못하는 신세다. 제105주년을 맞는 3·1절 국경일의 의미 역시 퇴색의 조짐이 완연하다. 이번 연휴 동안 일본 여행 예약이 급증하고 패키지 상품과 항공편이 동이 났다는 소식만 나부낀다. 억압의 시절에도 나라와 신념을 지키려 했던 순수한 마음들은 어엿했다. 우리 곁의 독립운동 공간들을 찾아 그 마음을 헤아려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떠할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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