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공장 불허’ 법적 다툼 이겨놓고 ‘계획 승인’ 한 고성군…왜?
민원 명분 설립계획 ‘불가처분’
1심 재판부 ‘고성군 승소’ 판결
항소심 ‘종소기업창업법’ 발목
‘처분 시 20일 이내 통보’ 규정
패소 판례에 조정권고안 수용
통영시 광도면에 사업장을 둔 레미콘 업체가 이전을 위해 공장 설립 계획을 신청한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산 53-2 일원. 붉은색 원이 대상지다. 카카오맵 캡처
경남 고성군이 업체와 소송전까지 감수하며 불허했던 레미콘 공장설립계획을 돌연 승인했다. 주민 민원을 명분으로 1심에서 승소하고도 항소심 판결 직전 재판부가 제시한 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재판 과정에 명백한 절차상 하자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안일한 행정이 패소 빌미를 제공하고 지역사회 혼란을 부추기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고성군에 따르면 최근 군은 거류면 신용리 산 53-2 일원 4800㎡에 대한 레미콘 공장 설립계획을 승인했다. 이 공장은 통영시 광도면 안정리에 사업장을 둔 A레미콘이 이전을 위해 준비 중인 시설이다. A레미콘은 2021년 7월, 군에 사업계획서를 냈다.
그러자 예정지와 인접한 마동·용동·초전마을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각 마을과 이격거리가 100~150m에 불과해 소음과 분지 피해가 불 보듯 뻔한 데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대형차 통행이 빈번해져 교통사고 위험도 높아진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공장 가동 시 발생하는 오염수가 마을하천과 당동만으로 유입돼 굴, 미더덕 등 양식장도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을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리고 주민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등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고성군은 그해 9월, ‘승인 불가’ 처분했다. 군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산업입지 개발에 관한 통합지침’을 토대로 6가지 불가 사유를 내세웠다. △토질조사 반영한 설계 검토 부재 △국도 77호선 미완공에 따른 진출입 결정 애로·교통흐름 방해·사고 위험·종사자 주차시설 미반영 △지하수 고갈 △비산먼지·소음·진동 △수질오염 △주변환경 부조화 등이다.
이에 A레미콘은 군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고성군 처분이 합당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전세가 역전됐다. A레미콘은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을 근거로 고성군이 절차를 어겼다고 항변했다. 해당 법은 공장설립계획 승인 불가 처분 시 업체에 20일 이내 통보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군은 기한을 넘겼고, 절차상 하자로 패소가 확실시되자 재판부가 나서 ‘조정권고안’을 제시했다. 군이 공장설립계획을 승인하면 업체는 소송을 취하하고,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하는 조건이다. 군은 대법원 상고를 고민했지만 유사 소송에서 지자체가 패소한 판례가 대다수라 포기했다. 결국 조정안을 수용한 군은 지난달 계획을 승인했다.
백지화를 기대했던 주민들은 미숙한 행정 처리에 분통을 터트린다. 한 주민은 “단순 민원도 기한 내 처리하고 결과를 통보하는 게 상식”이라며 “뻔히 법적 다툼이 예상되는 사안을 제대로된 검토도 없이 허술하게 방치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주민은 “행정에선 한 번의 실수로 치부할 수 있지만, 평생 혐오시설을 품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겐 생존권이 걸린 절박한 문제”라며 “주민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서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고성군은 남은 인허가 절차 과정에 주민 요구 사항을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현재 계획만 승인됐을 뿐 건립 신청은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개발행위 허가와 건축허가 등 절차가 남은 만큼 관련 부서와 협의를 통해 더 면밀하게 검토해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