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버스, BRT 주행은 가능해도 정류장에 설 순 없다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6인승 이상 대형 승합차·통근버스
허가 후 버스전용차선 운행 가능하나
정류장엔 시내버스 외 주정차 불가
통학·통근용 버스 불법 승하차 감수
“BRT 달리다 일반 노선 이동 어려워
자가용 이용 줄이는 역할 고려해야”
부산 중구의 한 BRT 정류장에 지난달 28일 통근버스가 정차해 있다. 김준현 기자 joon@
지난달 28일 오후 취재진이 방문한 부산 중구 한 BRT(버스전용차선) 정류장 앞. 배기음을 내는 시내버스 뒤로 ‘생산직 모집’ 문구를 창에 붙인 민간 기업 주황색 통근버스가 멈췄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은 이내 다른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공공기관 이름이 적힌 또 다른 대형 버스도 BRT 정류장에 멈추는 모습이 포착됐다. 직원 유니폼을 입은 시민이 버스에서 내렸다. 동구 부산역 BRT 정류장에도 A국립대학교 통근버스가 정차한 후 승객들을 내리고 떠났다. BRT 정류장에서 시내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가 사람을 내리는 모습을 이날에만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모두 현행법상 BRT 정류장을 이용할 수 없는 차량이다.
부산에 2013년 BRT를 도입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현실성 떨어지는 제도 탓에 통근버스가 ‘불법’ 오명을 단 채 BRT 정류장을 이용하고 있다. 현행법상 통근버스는 BRT 노선을 달릴 수는 있지만 정류장은 이용할 수 없다. 법 사각지대에 놓인 통근버스를 두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 전 지역의 BRT 정류장에서 시내버스 외 다른 차량이 승객을 태우거나 내릴 수 없다. 현행 도로교통법 등은 36인승 이상 대형 승합차나 법적 요구를 충족하고 경찰 허가까지 받은 관광버스, 통학·통근용 승합차는 BRT 노선을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임을 표시하는 기둥이나 표지판 또는 선이 설치된 곳 10m 이내에는 시내버스만 멈출 수 있다고 법은 명시하고 있다.
통근버스나 관광버스 등 시내버스가 아닌 대형 승합차는 BRT 노선을 달릴 순 있어도 정류장은 정작 이용할 수 없다. 탑승객을 하차시키려면 BRT 노선에서 다시 일반 차량이 다니는 도로 가장자리로 빠져야 한다.
BRT 노선에서 운행하다 승하차만을 위해 일반 노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대부분의 통근버스는 불법을 감수하고 BRT 정류장에서 승객들을 태우거나 내린다.
통근버스를 운영하는 업체는 불법을 범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A대학교 통근버스를 운행하는 김 모 씨는 “BRT 노선에서 일반 노선으로 이동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갓길도 주정차 공간이 매우 적어 댈 곳이 마땅치 않다”며 “대중교통을 권장하는 것이 부산시 정책이라면 출퇴근을 돕는 통근버스도 BRT 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산시는 제도 개선에 대해 별다른 검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통근버스 승하차를 BRT 노선에서 허가하면 시내버스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취지다.
부산시 버스운영과 관계자는 “현행법상 BRT 정류장에 주정차하는 일반 승합차는 모두 불법”이라며 “점선이 있는 갓길에서 주정차해 사람을 싣고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통근버스가 BRT 노선과 일반 노선을 번갈아 가며 운행할 경우 시내버스와 일반 차량 흐름에 상당한 장애를 줄 수밖에 없다. 법을 지키는 통근버스 운행이 오히려 시내버스 운행 속도를 높이는 BRT 취지를 해칠 수도 있는 셈이다.
전문가는 현실적인 BRT 정류장 이용 기준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현장에 나타난 불만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산연구원 이원규 선임연구위원은 “통근버스도 자가용 이용을 줄인다는 점에서 시내버스와 똑같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통근버스가 특정 시간대에만 운행한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장단점을 따져서 현행 제도에 개선이 필요한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