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필요한 아이들에게 ‘마지막 선물’ 남기고 떠났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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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기봉 (주)대봉기연 전 대표
1996년부터 28년간 초록우산 후원
'유산 기부'로 중·고교생 5명 꿈 지원

고 박기봉 대봉기연 전 대표는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을 하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초록우산 제공 고 박기봉 대봉기연 전 대표는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을 하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초록우산 제공

“평생 기부는 나와의 약속이었고 아이들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진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고 박기봉 (주)대봉기연 전 대표이사가 지난해 말 병상에서 초록우산 부산지역본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와 남긴 말이다.

박 전 대표는 1996년 11월 초록우산 부산지역본부와 인연을 맺은 후 28년간 기부를 이어 왔다. 평소 약속을 귀하게 여긴 그는 IMF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돕는 일을 멈춘 적이 없다.

경남 밀양시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 전 대표는 금형 기술자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부산 남구 문현동에서 맨손으로 창업했다.

‘기계는 공평하다’는 신조로 열심히 일한 덕에 프레스 사업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뤘다. 또한 현장에서 동료들의 산재사고를 목격하면서 프레스 관련 산재 예방에 앞장섰고, 프레스 자동화 설비의 국산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사업이 안정화되자 문득 ‘부모 잃은 어린이는 출발선이 다른데, 아무도 돕지 않는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평생 기부’를 결심하고 초록우산에 후원을 시작했다. 그동안 박 전 대표의 도움으로 자립한 아동은 15명이 넘는다.

지난해 말 지병 악화로 입원한 박 전 대표는 초록우산에 평생 기부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을 전했다.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남기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박 전 대표는 올해 1월 14일 세상을 떠났고, 아들 박준석 대표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후원금을 전달했다.

초록우산 부산지역본부는 ‘고 박기봉 울타리기금’이라는 사업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수소문했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중·고교생 5명을 선발해 각각 300만~800만 원 등 총 3000만 원을 지원했다.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서지은(가명) 학생은 “언니와 단둘이 살고 있어 새 악기를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꿈을 위한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입시를 포기하려고 했는데, 후원자님 덕분에 더 밝은 미래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윤지수(가명) 학생은 “그랜드피아노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 피아노로 열심히 연습해서 꼭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박지훈(가명) 학생은 “개인 피아노 없이 입시를 준비해 마음이 너무 무거웠는데 후원자님 덕분에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빛이 되고 본보기가 되는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했다.

이서윤(가명) 학생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저의 고집으로 무용을 시작해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큰 선물을 받게 되어 너무 벅차다. 박기봉 선생님 장학생으로 그 뜻을 잊지 않고, 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감사 편지를 보내왔다.

고 박기봉 전 대표는 초록우산의 장기 후원자이자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그린노블클럽 가입자였다. 2024년 1월 유산 기부로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을 남기며, 그린레거시클럽 80호에 이름을 올렸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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