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성 1인 가구 증가… “다양한 삶 존중받아야죠”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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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세계 여성의 날

세대 형태 변화 모든 연령대 늘어
결혼 인식 약화 20대 증가 뚜렷
일·취미 등 혼자만의 시간 일상화

경제·노년 준비 등 생애 과제 공유
여성·1인 가구 어려움 함께 겪어
안전·행복 추구 제도적 보완 필요

지난 5일 오후 7시께 방문한 부산 해운대구 중동 소포장식품 전문 마켓에 1인분으로 소분한 뻥튀기, 채소 등이 진열돼있다. 양보원 기자 bogiza@ 지난 5일 오후 7시께 방문한 부산 해운대구 중동 소포장식품 전문 마켓에 1인분으로 소분한 뻥튀기, 채소 등이 진열돼있다. 양보원 기자 bogiza@

지난 5일 오후 7시께 방문한 부산 해운대구 중동 소포장 식품 전문 매장. 매장은 퇴근 후 이어폰을 꽂은 채 장을 보는 손님들로 붐볐다. 손님 상당수는 소분된 뻥튀기나 떡볶이 떡, 반으로 잘린 야채와 식빵 2장, 닭다리 한 개 등 1인분 식재료를 구입하고 떠났다. 박지영(27) 씨는 “구입한 재료로 집에서 요리를 해 영화를 보며 저녁을 먹을 예정”이라며 “혼자라도 끼니를 대충 때우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정성껏 요리를 해 먹으면 삶의 만족도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직장에서 승진하고, 반려동물을 기르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등 다양한 삶을 산다. 여성의 삶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엄마’뿐만이 아닌 다양한 여성의 삶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시 등에 따르면 2019년 23만 1431명이던 부산 여성 1인 가구는 꾸준히 증가해 2022년 27만 8708명에 달했다.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연령별로 따져봐도 20대 이상 모든 연령대에서 증가세를 보였다. 1인 가구는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라 세대의 한 형태가 됐다. 평범한 여성이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모습이 일상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변화는 부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1인 가구 중 여성 비율은 부산이 전국보다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1인 가구 750만 2000명 중 여성은 375만 1000명으로 50%를 차지한다. 부산의 경우 1인 가구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54.46%로 남성보다 많다. 부산 강서구 명지동에서 혼자 살고 있는 박은진(23) 씨는 “부산은 맛집도 많고 공연이나 전시 등 문화도 발달했으며 교통편도 잘 돼 있어 여성 1인 가구가 살기에 적합한 도시”라고 말했다.

연령별로는 20대 여성의 1인 가구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2019년 3만 7469명이던 20대 여성 1인 가구는 2022년 4만 8996명으로 1만 1527명 늘었다.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점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이들은 성숙한 인간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주영은(25) 씨는 “결혼제도 자체가 사회적 계약이라 생각하는데 내가 과연 그 계약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을 때 결혼이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면 반려동물과 함께 멋지게 혼자 살아가는 미래를 그린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여성들도 경제적 독립, 주거, 친밀한 관계 맺기, 정서적 안정, 노년의 준비 등 모든 사람이 겪는 생애 과제들을 마주한다. 이때 ‘여성’이 갖는 어려움과 ‘1인 가구’의 어려움을 함께 겪기도 한다. 다세대주택에 홀로 사는 직장인 이정숙(52) 씨는 최근 샤워 중 갑작스러운 통증을 느꼈다. 극한의 고통이 한순간에 찾아왔지만, 이웃에게 선뜻 도움을 청하기는 쉽지 않았다. 범죄에 취약한 1인 가구 여성이기에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씨는 홀로 119를 불러 병원에 갔다.

홀로 사는 여성들은 보호자가 필요한 위급 상황에서 제도적 한계를 느낀다고 말한다. 현행법은 여성과 남성,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세대만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1인 가구에 실질적 보호자 역할을 하는 이가 있더라도 법적 보호자가 아니면 중요한 순간에는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다.

최근엔 응급실에서 위급 상황을 경험한 두 여성이 성인 입양을 통해 엄마와 딸로 ‘서류상’ 가족을 꾸리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김주희(45) 씨 역시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친구를 사귀었지만, 이들은 내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어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1인 가구 여성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여성의 삶이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간 1인 가구 증가는 사회적 위기이자 공동체가 무너지는 징후처럼 다뤄졌다. 특히 저출생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며 홀로서기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향하기도 했다.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변정희 상임대표는 “아이를 돌보는 ‘엄마’뿐만이 아닌 모든 여성의 삶이 안전하고 행복해야 한다”며 “여성 1인 가구는 앞으로도 증가할 전망인 만큼 실태조사와 관련 논의를 바탕으로 한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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