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에 대형병원 갈 엄두 못 내… 환자도 병원도 지쳤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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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 사직 한 달

의료대란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
수술 지연 350건 등 509건 피해
상급종합병원 입원 36.5% 줄어
응급실 비응급 환자 10%P 감소
중형·동네 병원으로 환자 분산
교수까지 사직 결의해 현장 혼란

1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을 찾은 시민이 의자에 엎드려 있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벌어진 의료대란이 한 달간 이어지는 가운데, 남아있던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 제출을 예고하면서 현장은 더 큰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전공의들은 지난달 19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부터 근무를 중단했다. 의대 교수들도 오는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연합뉴스 1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을 찾은 시민이 의자에 엎드려 있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벌어진 의료대란이 한 달간 이어지는 가운데, 남아있던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 제출을 예고하면서 현장은 더 큰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전공의들은 지난달 19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부터 근무를 중단했다. 의대 교수들도 오는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전공의 집단 사직서 제출로 촉발된 의료대란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전공의에서 전임의, 의대생으로 확산된 항의는 이제 교수들까지 ‘자발적 사직’이라는 방식으로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상황이다. 의료대란 발생으로 그동안 회색 지대에 놓였던 PA(진료 보조) 간호사는 양성화의 길로 가고 있고, 경증환자가 몰리던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은 중증·응급환자만 받아 의료 전달체계가 정상화된 역설도 벌어졌다.

■상급종합병원 입원 36.5% 감소

의료대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다. 전공의 공백 장기화로 수술도, 입원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됐다. 부산 한 대학병원에서 자궁 수술이 예정된 60대 환자 A 씨는 “어렵게 수술 날짜를 잡았지만 병원 인력이 부족해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안내받았다”면서 “정부와 의사 싸움에 애꿎은 환자만 피해를 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1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지난 15일까지 1414건의 상담이 있었고 이중 509건이 실제 환자 피해 사례였다. 수술 지연이 509건 중 350건으로 가장 많았다.

병원이 정상 운영되던 2월 첫 주와 비교해 3월 첫 주 상급종합병원의 일평균 입원 환자는 36.5% 감소했다.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 감소로 경영이 흔들릴 정도가 됐다. 부산대병원, 동아대병원, 인제대 백병원 등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고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를 실시할 정도다.

부산시병원회 김철 회장은 “정부가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의료개혁의 한 부분이라고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이로 인해 발생한 상급종합병원의 손실에 대해 저리 융자 등의 방식으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부산시병원회에 따르면 종합병원급 2차 병원, 그중에서도 내과가 있는 병원의 환자는 많이 늘었다.

전공의가 빠져나간 자리는 간호사가 메우고 있다. 특히,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대폭 늘어났는데, 현장에서는 업무 과중을 호소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노귀영 본부장은 “병원마다 ‘의사의 일을 간호사가 대체할 수 있게 한다’는 부분에 대한 해석도 다르고, 결정적으로 병원장의 판단 여하에 따라 현장은 제각각으로 돌아가며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며 “간호사의 의료 행위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정부의 방침에도 간호사들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 전달체계 정상화 역설

응급실은 비상 상황이지만, 상급종합병원에는 비응급(경증) 환자 내원이 크게 줄고, 상급종합병원, 중형병원(병원·종합병원), 의원으로 이어지는 1~3차 의료 전달체계는 정상화되는 분위기다.

부산 A 상급종합병원에 따르면, 의사 파업이 본격화된 지난달 20일을 기준으로, 지난달 1~19일 응급실을 찾은 환자 중 비응급 환자의 비율은 32.5%였지만, 20일 이후로는 20.5%로 12%포인트(P)가 줄었다. 상급종합병원인 B 병원도 응급실을 찾은 비응급 환자 비율이 10%P가량 감소했다.

A 병원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비응급 환자들이 중형 병원으로 발길을 돌리거나,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된 비응급 환자가 다시 중형 병원으로 이송되는 경우도 늘었다”고 전했다.

소방당국도 비응급 환자들이 전문의 중심의 중형 병원이나 접근성이 좋은 동네 병원으로 분산되는 효과를 체감한다고 밝혔다. 부산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119구급차를 타고 대형병원으로만 가달라고 했던 비응급 환자와 보호자들이 의사 파업 이후 응급실 이용이 어려울 것 같다며 중형 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소방의 1~3차 병원 분산 안내를 전반적으로 잘 수용하고 따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여전히 의료 현장은 혼란스럽다. 동아대병원 의대 교수들은 18일 성명서를 내고 향후 ‘자발적 사직’을 결의했다.

부산 소재 병원에 남은 전공의 B 씨는 “정부는 의료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의료계 역시 타협이 가능한 대안을 내놓는 데 힘써야 한다”며 “더 이상 소모적인 싸움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중대본은 이날 보상체계 개편을 예고하며 행위별 수가제 대신 ‘가치 기반 지불 제도’로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상대가치 수가제도를 전면 개편해 중증 수술 분야 보상을 강화하고, 필수의료 분야의 입원, 수술, 처치에 대한 수가를 대폭 높이는 내용이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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