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미술을 스크린 밖에서 만난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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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미술 기획전 ‘씬의 설계…’
9월까지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국대’ 영화미술감독 3인 다뤄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CJ 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CJ ENM 제공

2022년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 분)는 ‘해준’(박해일 분)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자신과 함께 살던 남편을 죽였지만 감히 악인이라 부를 수 없는 서래가 상징하는 건 안개 같은 모호함이다.

서래가 지닌 모호한 분위기와 그녀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는 서래의 집에 걸린 벽지다. 보는 시각에 따라 산 같기도 하고 바다 같기도 한 이 벽지는 서래의 처지를 아름다우면서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헤어질 결심’ 속 서래의 집처럼 미술을 통해 영화 캐릭터에 색깔을 입히는 작업은 영화미술감독이라고도 불리는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몫이다. ‘헤어질 결심’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류성희 감독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철저한 사전 조사, 디자인 작업 등을 통해 서래와 해준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류 감독은 2016년 박 감독의 ‘아가씨’를 통해 칸 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벌칸상(기술상)을 수상한 실력자다. 고상하면서도 섹슈얼한 ‘아가씨’ 속 히데코(김민희 분)의 방도 그녀의 손에서 탄생했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국내 대표 프로덕션 디자이너 3명의 작업 과정을 담은 기획전 ‘씬의 설계 : 부산’을 진행한다. 오는 9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미술감독인 류성희, 조화성, 한아름 감독의 작업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들은 ‘올드보이(2003)’, ‘살인의 추억(2003)’에서부터 ‘킹메이커(2022)’, ‘길복순(2023)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사를 아우르는 인기 작품 제작에 참여한 베테랑들이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헤어질 결심’을 포함해 ‘아가씨’, ‘한산:용의 출현’, ‘킹메이커’, ‘길복순’ 등의 작품에서 미술 디자인이 완성되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영화의 주요 내용이 담긴 스토리보드를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 자료조사, 세팅, 3D 그래픽 모델링 등의 작업을 거쳐 영화미술이 구현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살펴본다. ‘킹메이커’에서 김운범(설경구 분)의 선거 사무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한산:용의 출현’에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어떻게 재현됐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감독들의 제작 후기와 자신만의 노하우가 담긴 인터뷰 영상도 준비돼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

관람객을 위한 특별한 공간도 마련됐다. ‘헤어질 결심’ 속 서래의 집이 포토존으로 재현돼 방문객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사진을 찍어 볼 수 있다. 전시관 안에 마련된 3채널 영상실에서는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미술 장면을 다각도로 볼 수 있도록 영화 장면이 상영된다.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22일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박물관 휴관일인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관람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부산영화체험박물관으로 문의(051-715-4200)하면 된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는 영화 속 '서래'와 '해준'이 되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돼있다. 탁경륜 기자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는 영화 속 '서래'와 '해준'이 되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돼있다. 탁경륜 기자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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