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대통령 직속 ‘해양위원회’ 설치 꼭 이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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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세계해양포럼 기획위원장

중국 고사에 ‘화이부실(華而不實)’이라는 성어가 있다. 말 그대로 ‘겉은 화려한데 실속이 없다’는 의미다. 우리 속담의 ‘빛 좋은 개살구’와도 맥락이 같다. 여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을 보면서 든 생각이 딱 그랬다. ‘해양강국 대한민국’은 역시 헛구호일까.

선장 출신의 해양법학자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집권 여당의 ‘영입 인재’로 발탁됐을 때 전국의 상당수 해양수산단체는 이를 환영했다. 십시일반으로 예산을 모아서 지지 의견 광고를 신문에 싣는 일부 단체도 있었다.

해양산업 관련 의제·범위 대폭 확대

국가 자원의 효율적 활용 위해서는

특정 부서 넘어 범국가적 기획·관리를

해양수산업계 출신이 국회의원이 된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처럼 여당 비례대표로 해양수산 전문가가 선출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해양에 대한 정부 여당의 인식 변화로 받아들이는 해양수산인이 많았고, 필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여당의 정책 분야 인재로 영입된 김 교수는 붉은색 정당 점프를 입고 꽃다발을 건네받으면서 “해양산업 비중이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15%나 된다. 그 비중만큼만이라도 해양수산 전문가들이 국회에서 활동하게 되면 우리나라 해양산업에 대한 국민 인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한 뒤 선장으로 있다가 교수가 됐다. 고려대에선 석탑강의상 4차례, 안암연구상 3차례나 수상한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법학자다. 연구와 강의 성과만으로도 해양 전문가로 충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다른 학자들과 달리 현장에 늘 발을 둔 실천가라는 대목에서 그는 더 돋보였다. 그는 현장 방문을 즐겼고, 그곳에서 크고 작은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 노력했다. 그것이 기업가이든, 노동자이든 가리지 않았고, 각종 칼럼 쓰기와 좌담회 참여 등을 통해서 해양인의 목소리를 꿋꿋하게 전했다.

그러나 아쉽다. 해양수산인의 열망과 기대는 여기까지였다. 그는 집권 여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어렵게 선택됐지만, 그가 받은 배정 순위로는 당선권에 턱걸이하기도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화이부실이 되었다고나 할까. 김 교수는 결국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다만 정책 분야 인재로서 그의 역할은 유효하다.

총선이 코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지역구 254명과 비례대표 46명, 즉 300명의 새로운 국회의원이 곧 탄생할 것이다. 국민 선택이 어떤 정치적 지형도를 그려낼지 짐작할 순 없다.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해양수산인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정치를 통한 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역할 찾기에 나선 그의 도전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참에 정부 여당에 재촉구한다. 대통령 직속의 가칭 ‘해양위원회’ 설치를 검토해 달라. 필자는 앞선 칼럼(〈부산일보〉 2023년 6월 12일 자 ‘오션 뷰’)에서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사안이 수없이 많겠지만 지금의 해양산업은 해양수산부라는 단위 부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하고 다양해졌다.

해양산업의 정의부터 과거와 달라졌다. 해운, 항만, 수산으로 단순히 구획 정리할 수 없다. 해양과학, 해양자원, 해양경계, 해양관광, 해양환경, 해양물류와 기후 문제 등 해양과 관련된 의제와 범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게다가 해양공간은 더 이상 해양수산부 인력과 정책, 정보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영역이 되고 있다. 각종 정책을 다부처 차원에서 선도적으로 기획하고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을 사전 조정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국가 자원의 효율적 활용 차원에서 해양공간은 특정 부처가 아니라 범국가적으로 기획되고 관리돼야 한다.

국가 경제와 수출 정책의 사활이 걸린 ‘탄소 중립’만 해도 해상풍력을 포함한 해양공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탄소 중립’은 지금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 중 하나다. 실제로 이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크고 현재적이다. 대한민국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에 대해 노광장비 독점 기업 중 하나인 네덜란드 ASML사는 이미 생산품뿐 아니라 사용한 모든 전력에 대해 ‘탄소 중립’을 시한부로 강제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반도체 수출길이 완전히 막힐 수 있다는 경고다.

지금으로선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해 해상풍력을 시급히 개발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선 해양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재배치해야 한다. 부처 간, 중앙-지방정부 간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 해양위원회’ 설치를 강력히 요청하는 이유다.

‘해양’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새로운 인식 전환을 재촉구한다. ‘해양강국 대한민국’은 결단코 헛구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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