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인지 ‘잉여촌’ 60년만의 종간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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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창간… 36호 마무리
이상개 시인 추모 특집 실어

지역에서 발행해 온 시동인지 <잉여촌>이 제36호로 ‘종간호’를 냈다. 잉여촌의 종간호는 대부분의 잡지나 동인지가 예고도 없이 종간되는 경우에 비추어 보면 이례적이다. 잉여촌은 1964년 6월 1일 창간해 햇수로는 60년을 채웠다. 1985년 휴간에 들어가 2004년 9월에 복간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창간동인인 오하룡 시인은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며 “잉여촌의 산파역이었고 기둥이었고 생명줄이었던 이상개 동인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 방법이 없다. 끝까지 동행해 준 울산의 박종해·조남훈, 경주의 김성춘·장승재, 제주의 김용길, 서울의 유자효 등 문학계의 보배인 우리 동인들에게 절하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종간사를 썼다.

시동인지 잉여촌은 뜻밖에도 해병으로 복무하던 문학청년들이 월간 <해병>에 투고한 인연으로 만들어졌다. 이상개, 조남훈, 유근, 전종진, 오하룡, 이종환 등 창간호를 만든 시인들이 모두 해병 출신이다. 처음에는 동인지 인쇄까지도 <해병>의 인쇄소를 이용하려고 했다. 실제로 <해병>이 교도소 인쇄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4집까지는 꾸역꾸역 거기서 만들기도 했단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 그대로이다. 잉여촌은 당시에 동인지들이 쏟아지며 자신들 처지가 소외된 변두리 같은 기분이어서 반어적인 제목을 이름으로 정했다고 전한다.

종간호는 고 이상개 시인 추모특집으로 ‘영원한 생명’을 비롯한 이 시인의 대표시 9편을 실었다. 다음은 그 중 ‘시인’이다. ‘시인은 시를 쓰지만 시는 사람을 만든다./사람이 시를 만드는 게 아니고 시가 사람을 만든다./시인은 사람이지만/시는 결코 사람이 아니다./요즈음은 잘못된 시가 잘못된 사람을 만들고 있으니./시를 쓰는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좋은 작품만 남기고 싶어 했던 잉여촌의 종간이 아쉽기만 하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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