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대적으로 한자 해석… K인문학 부산이 주도해야” 하영삼 경성대 중국어과 교수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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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한자학도서관 개관
한자, 재미있고 돈 되는 콘텐츠
학술서적 ‘완역 설문해자’ 총애
“퇴임 인문학자 책 공유했으면”

경성대 하영삼 중국어과 교수가 세계한자학도서관에서 고서를 펼쳐 들고 있다. 박종호 기자 nleader@ 경성대 하영삼 중국어과 교수가 세계한자학도서관에서 고서를 펼쳐 들고 있다. 박종호 기자 nleader@

경성대 멀티미디어관 3층에 오르니 어디선가 묘하게 익숙한 냄새가 난다. 한국한자연구소를 찾아 들어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오래된 책이 모여서 내는 은은한 향기였다. 10평 남짓한 공간은 사람보다 책이 숨 쉬는 세계였다. “여기에 있는 책은 만 권도 안 돼요.” 이 방의 주인인 하영삼 경성대 중국어과 교수가 모습을 드러내며 하는 첫 마디였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읽고 쓰니 부럽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독방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죄수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하 교수는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 단장, 세계한자학회(WACCS) 상임이사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지난해 연말에는 우수 논문으로 대한중국학회로부터 초대 공자학술상을 수상했고, 최근 경성대 도서관 안에 별도의 세계한자학도서관 개관으로 분주했다.

한자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한자는 젊은이들에게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 쉽다. 요즘 대학가에는 한때 넘쳐나던 중국 유학생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하 교수는 “논어와 성경이 구시대의 유물인가?”라고 반문했다. 한자 자체보다는 혁신적 해석과 현대에 맞게 응용하기 위한 노력 없이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문제라는 것이다. 성리학도 당시에는 혁신적인 최고 인기 학문이었지만, 조선 왕조 500년간 고집한 탓에 쇠락하고 말았다. 지금 성경대로 살라고 하면 구시대적이지만, 성경은 당시에 가장 혁명적이고 선진적인 이야기였다는 설명이다.

하 교수는 한자가 재미있고 돈이 되는 콘텐츠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결국 인문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나 문헌을 과거의 모습 그대로 읽으면 그야말로 고리타분해지기 십상이다.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 ‘뮬란’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중국에서 뮬란은 전쟁에 나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익숙한 이야기다. 디즈니가 다른 각도에서 해석을 하니 세계적인 영화가 된 것이다. 그는 한자도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 왔으니 전통 문자라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세계한자학도서관이 원천 소스가 되는 자료를 제공해 인문학 분야에서 K학문을 이끌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말의 한자어 비중은 70% 가까이 된다. 그래서 한자의 의미를 제대로 알면 개념이 명확해진다. 하 교수가 예로 든 몇 개의 단어 중에서 ‘민주(民主)’의 의미가 머릿속에 꽂혀 버렸다. 그가 2018년에 쓴 〈한자어원사전〉에는 ‘민(民)은 원래 반항 능력을 줄이고자 한쪽 눈을 예리한 침으로 해친 노예라는 뜻을 그렸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노예의 두 눈을 모두 없애면 노동을 못하니, 하나만 없애 반항하지 못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노예가 백성이 되고, 민중이 되고, 주인인 사회가 되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를 항상 기억하고 있으라고 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우리를 노예로 부리고 싶어 하니, 눈 하나 안 빠지게 살려면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하 교수는 수많은 책과의 인연 가운데 2022년에 낸 학술총서 〈완역 설문해자〉 5권을 첫사랑이자 영원한 사랑이라고 고백했다. 〈설문해자〉는 A.D.100년에 허신이 만든 인류 최초의 한자 어원 사전이다. 하 교수가 1991년 허신 묘소를 참배하면서 이 책의 번역을 다짐하고, 2000년부터 번역을 시작한 결과물이라니 그럴만하겠다 싶다. 200자 원고지로 1만 9000매 분량이다. 30여 년 전 〈부산일보〉 지면에 한자 연재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는 특별한 인연을 전하기도 했다.

끝으로 하 교수는 한 가지 고민을 토로했다. 정년퇴임이 다가오자 가산을 탕진해(?) 가며 모은 책을 둘 곳이 없어 고민이라는 것이다. 사실 정년을 맞이하는 인문학자들은 거의 비슷한 처지다. 그래서 “부산시에서 공간을 마련해 책을 기증받고, 이분들이 시민강좌를 열도록 하면 좋겠다”는 게 그의 제안이다. 아까운 책, 사실 그보다 더 귀중한 ‘사람책’을 활용해 부산에서 융합적인 고급문화를 창출해 보자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책의 중요성은 변치 않는다고 믿는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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