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톡톡] 감사함을 가르치는 교육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허소영 부산교사노조 초등부위원장

선생님들은 해마다 5월이면 찾아오는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다. 꽃 한 송이라도 누가 줄세라, 손 편지도 비싼 편지지는 아닌지,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온 종이꽃마저도 검열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게 거절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라 차라리 이런 민망한 날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교사들도 많아졌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 있던 내게 미국에서의 학부모 생활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선 PTA라는 학부모 단체를 통해 반별로 교육기금 모으기 경쟁을 하고, 이 단체가 각종 행사에 동원돼 교육활동을 돕고 보조교사 등의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리나라의 학부모단체는 내빈으로 참석할 뿐, 업무는 교사가 맡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빈인 학부모를 접대하기 위한 다과 구매부터 학부모를 위한 행사·연수 기획, 강사 선정, 예산 기획과 집행까지 도맡는다. 이와 달리 미국의 학부모 단체는 학부모들이 주체가 돼 각종 행사를 운영한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가 있어도 교사 혼자 감내할 일이지 학부모에게 보조교사 역할을 맡긴다는 건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두 번째 충격은 한 학년이 끝나는 5월에 있었던 ‘교사감사주간’(Teacher Appreciation Week)였다. 5월이 되면 ‘Room Mom’(반 대표에 해당)이 선생님이 선호하는 선물 리스트를 받아서 모든 학생의 집으로 보낸다. 월요일은 선생님께 감사 카드 드리기, 화요일은 선생님이 좋아하는 색깔 옷을 입고 오기 등으로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고 마지막에는 선물 리스트에 있던 간단한 선물이나 25달러(약 3만 4000원) 상당의 기프트 카드를 준비해서 보낸다. 그러면 선생님도 다음날 땡큐 카드(Thank you card)를 보내 감사하다는 답례를 한다.

주변의 한국인 학부모는 한국에서도 안 하던 ‘조공’을 미국에서 하게 될지 몰랐다며 선생님들 길을 이렇게 들이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했지만, 나는 감사한 마음을 용기를 내 표현하는 아이들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감사 카드를 쓸 때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것, 잘해주신 것을 돌이켜보고, 자신의 성장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선생님이 애써주신 부분을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을 떠올리는 이 과정은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된다. 한 해 동안 정성껏 가르쳐 준 선생님께 부모님이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살아있는 인성 교육이 아닐까.

대부분의 교사는 그저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좋아서, 잘 가르치고 싶어서 이 직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교사에게 존중은커녕,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학부모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교육 당국은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교사의 인권이나 교권 존중은 열외로 둔다.

더 이상 청렴할 수도 없는 교사들에게 청렴을 강조하며 비리 범죄자 프레임을 씌우는 사회적인 시선은 너무도 가혹해서 가졌던 사명감마저 상실할 지경이다. 물질적인 선물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노고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 교사들의 바람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교사를 존중하고 그 노고에 감사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우리 아이들을 감사함을 아는 인격자로 성장시킬 수 있다. 동시에 공교육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의 사기를 높여 더욱 따뜻한 공교육 현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도록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은 어떨까. 거절하는 서글픔이 아닌 말 한마디의 따뜻함이 채워지는 교실이 되길 바라본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