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대 입구 고층 아파트, 공원 능선 다 가린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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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스동서, 29~31층 3동 추진
자연경관 사유화 우려 목소리 높아
부산시 심의 ‘주변 조화 권고’ 그쳐
무책임한 시 개발 행정 비판 고조

아이에스동서가 319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립을 추진하는 부산 남구 용호동 973번지 일원. 김종진 기자 kjj1761@ 아이에스동서가 319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립을 추진하는 부산 남구 용호동 973번지 일원.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 12일 오후 3시께 부산 남구 용호동 용호만유람선터미널 2층. 화창한 날씨를 배경 삼아 이기대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완연한 봄 날씨에 등산복을 입고 이기대 공원을 오가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건설사인 아이에스동서(주) 자회사인 (주)엠엘씨가 고층 아파트 건립을 추진하는 부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남구 용호동 973 일원에 회색빛 공사장 가림벽이 들어서 이기대 입구를 막은 형국이었다. 파란색 천이 둘러진 측면에서 보이는 부지 내부에는 사무실 용도로 보이는 컨테이너가 여러 개 있었다. 몇몇 시민은 부지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이곳에 31층 아파트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한 시민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박 모 씨는 “대연동에 사는데 집에서 보이던 이기대 풍경도 아파트가 들어서면 다 가려지겠다”며 “아파트가 들어서면 이기대가 입주민 전용 공원처럼 되는 것 아니냐”고 눈살을 찌푸렸다.

부산 이기대공원 턱밑에 고층 아파트 건립이 추진(부산일보 4월 8일 자 11면 보도)되면서 지역 사회에서 조망권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공공이 즐기던 자연경관의 예정된 사유화에 시민들은 벌써부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5일 부산시와 아이에스동서 등에 따르면, 남구 용호동 973 일원 2만 3857㎡ 부지에는 각각 29, 30, 31층 아파트 3개 동이 들어선다. 시 건축 심의에 제출된 계획 내용과 시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용호부두를 기준으로 높은 순서대로 아파트 3개 동이 일렬로 들어설 전망이다. 바로 뒤 이기대 능선에 따라 아파트 3개 동 높이를 맞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기대 조망권은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인다. 29층 아파트 높이는 100.7m, 30층은 103.9m, 31층은 110.5m다. 용적률은 최대치인 250% 바로 턱밑인 249.9%까지 설계됐다. 반면 이기대 높이는 127m 수준으로 아파트 건립 시 정상을 제외한 이기대가 완전히 가려진다.

문제는 시 심의가 사실상 아무런 제동도 걸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는 조망권에 대해 “건축물 3개 동의 높이 계획은 사업지 동측(이기대공원) 장자산 능선 스카이라인을 고려해 조화로운 계획이 되도록 검토해달라”고 권고하는 데 그쳤다. 통경축 부분은 아예 명시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아파트가 이기대 능선을 따라 들어서게 돼 이기대 자체가 거의 가려지게 됐다.

인근 주민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인근 아파트 입주민 손 모(75) 씨는 “저 좁은 부지까지 아파트를 들이밀어야 하냐”며 “개발이 된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허락하는 무책임한 시 행정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도시 전문가는 시민 공공재인 경관 보존을 위한 시 대책 부재를 지적했다. 부산대 도시공학과 정주철 교수는 “부산시가 도시 경관을 보존한다고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는데, 이번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조망권 확보를 위한 통경축 논의 등 공원이나 해안가 주변에 아파트를 지으려면 더욱 까다로운 검증 과정과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아이에스동서가 남구 용호동 973 일원 2만 3857㎡ 부지에 고층 아파트 신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논란이 됐다. 이기대 경관을 사유화하고, 이곳을 해양레저관광단지로 만들겠다는 시 계획과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부지는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난 2월 부산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 심의를 조건부로 통과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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