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투표지 앞에서 망연자실?… 무효표만 5% 육박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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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투표자 4년 전보다 3% 감소
무효표, 되레 2만 4339표로 증가
비례는 무효표 9만 5000표 넘어
정당 난립·막말 등에 등 돌린 듯
정치 정상화가 22대 국회 급선무

22대 총선이 치러진 지난 10일 오후 부산 부경대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사무원들이 수검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22대 총선이 치러진 지난 10일 오후 부산 부경대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사무원들이 수검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투표자 수는 줄었지만 무효표는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투표의 경우 무효표는 총 투표수의 4.8%인 9만 5000여 장에 달했다. 막말과 상대 진영을 향한 혐오로 얼룩진 정치에 대한실망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4·10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부산 유권자는 총 194만 6287명이다. 이는 4년 전 21대 총선에서 200만 1566명이 투표장을 향한 것과 비교하면 5만 5279명(2.76%) 줄어든 수치다.

반면 이 기간 지역구 투표 무효투표 수는 2만 3610표에서 2만 4339표로 729표 늘었다. 선관위는 어느 란에도 기표하지 않거나 두 개의 투표칸에 걸쳐 날인하는 등의 경우도 무효표로 처리한다. 이번 부산 국회의원 선거 총 투표수 대비 무효표가 차지하는 비율만 보면 1.25%에 그치지만 4년 전보다 전체 투표수가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증가 폭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정치권 반응이다.

특히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무효투표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부산 전체 투표자 194만여 명 중 9만 5000여 명인 4.8%가 무효표를 던졌다. 정당 투표에서는 국민의힘 위성정당 국민의미래(85만 537표), 조국혁신당(41만 6147표), 더불어민주연합(38만 6019표), 개혁신당(5만 8787표) 순으로 득표수가 많았는데, 무효표가 4위를 기록한 개혁신당보다 더 많은 것이다. 전국의 경우 정당 투표수 2834만 4519표 중 4.4%인 130만 9931표가 무효로 처리됐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우선 비례대표 무효표 증가 원인으로는 21대 총선부터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꼽힌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꼼수 위성정당을 만들고, 역대 최다인 38개 비례정당이 난립해 투표용지 길이가 51.7cm나 되면서 유권자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거듭된 막말과 진영의 극단화로 시민들이 정치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게 근본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 이번에는 총선에서 레이스 중간에도 각종 의혹, 망언 등 일부 당선인의 도덕성 문제가 발생했다. ‘이대생 미군 성상납’, ‘퇴계 이황 성관계 지존’ 등 과거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당선인, 새마을금고로부터 대학생 딸 명의로 사업자 대출을 11억 원 받아 ‘편법 대출’ 논란이 일었던 양문석 당선인 등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부산의 22대 총선 투표율 전국(67.0%)보다 0.5%포인트 높은 67.5%을 기록한 만큼 어느 때보다 유권자들의 열기가 뜨거웠다고 반론한다. 하지만 결국 상대를 향한 분노로 양당 지지층이 결집했을 뿐 중도층과 일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렵다. 총선 이후 지역에서는 레이스 중·후반부 강하게 불어온 정권 심판론으로 야권이, 낙동강 벨트를 중심으로 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원 행보로 여권이 각각 결집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이번 22대 국회의 최대 과제는 정치의 정상화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총선 레이스 기간 현장에서는 민의가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았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면서 “당시에는 ‘아직 표심을 결정하지 않은 유권자가 많다’고 단순히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개표 이후 확인된 무효표를 보면 결국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부산 18명의 당선인들이 혐오의 정치를 끝내고 조정과 타협이라는 진짜 ‘정치’를 복원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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