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새의 노래', 피스, 피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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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파블로 카잘스 음반 커버. 조희창 제공 파블로 카잘스 음반 커버. 조희창 제공

4월 26일은 역사 속에서 두 개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1986년 오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1937년엔 스페인의 게르니카 폭격 사건이 일어났다. 오래전 마드리드의 국립소피아왕비예술센터(왕비미술관)에서 ‘게르니카’ 그림을 실제로 보았을 때가 떠오른다. 가로 7미터, 세로 3미터가 넘는 흑백 톤의 그림이 주는 힘은 압도적이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지 않았다면 1937년 4월 26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쿠데타로 집권한 프랑코 장군은 스페인 내전을 벌여 권력을 잡았다. 1937년 오늘, 프랑코 측과 동맹을 맺은 독일의 콘도르 군단이 공화파의 거점 도시 게르니카를 융단폭격했다. 바스크 지방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는 28톤이 넘는 폭탄이 쏟아졌고 무수한 양민이 불바다 속에서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참담한 마음으로 ‘게르니카’를 완성해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했다.

프랑코 독재 정권에 저항한 예술가는 피카소뿐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첼로의 전설’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도 있었다. 게르니카 폭격을 감행한 후 프랑코는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고,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들였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카잘스는 프랑스 남단의 프라드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음악회를 통해 스페인의 민주화를 호소했다.

카잘스가 앙코르곡으로 가장 사랑한 레퍼토리는 ‘새의 노래(El cant dels ocells)’였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민요를 편곡한 것으로, 우리나라 ‘아리랑’ 같은 정서가 담긴 곡이다. 3분 정도의 짧은 멜로디지만 고국에 대한 사랑과 세상의 평화를 염원한 카잘스의 상징적 노래였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백발의 노인이 된 카잘스는 혼자서만 첼로를 연습할 뿐 무대에는 서지 않았다. 그런데 1971년 10월 UN 회의장에서 연주할 것을 요청받았다. 당시 95세의 카잘스는 연주 전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 40여 년간 공식적인 연주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해야 할 것 같군요. 카탈루냐 민요 ‘새의 노래’를 연주하겠습니다. 카탈루냐 새들은 하늘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피스(peace), 피스(peace), 피스(peace)!’ 그것은 바흐와 베토벤, 모든 위대한 음악가들이 사랑하고 찬미해 온 멜로디입니다. 너무나 아름답지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술은 ‘게르니카’ 같은 그림을 그려내고, ‘새의 노래’ 같은 음악을 남겨 놓는다. 그것은 어떤 말보다 오래도록 마음을 울린다.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새의 노래'.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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