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실험실 고양이' 된 용산 참모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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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부 부장
총선 참패후 수석 이상 고위직 일괄 사의
반려도, 수리도 안된 상태로 20여일 지나
양자역학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 같아
쇄신·소통의 척도…명확하게 거취 알려야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을 상상한 모습. 위키피디아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을 상상한 모습. 위키피디아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5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증명한다면서 독특한 ‘사고(思考) 실험’을 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론물리학자인 알베트 아인슈타인도 이 문제로 슈뢰딩거와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니 당시에도 반향이 대단했다.

실험은 단순하다. △고양이 한 마리 △미량의 방사성 원소 △방사성이 붕괴되면 깨지는 독극물병을 동시에 밀폐된 금속상자에 넣어둔다. 방사선 원소의 양은 아주 적어서 1시간 동안에 붕괴할 확률과 붕괴하지 않을 확률이 각각 50%이다. 1시간이 지난 뒤 상자 안의 고양이는 어떤 상태일까.

현실에서라면 고양이의 상태는 죽었거나 아니면 살았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죽은 고양이와 살아 있는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의 상태’로 계산된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요즘 대통령실 고위 참모들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아 보여서다.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다음 날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급 이상 참모진이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정책실장, 정무수석, 홍보수석, 경제수석, 사회수석 등이다. 그 후 20일이 지났는데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이 새로 임명됐을 뿐, 나머지 인사들의 거취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해당 참모들에게 “사의 반려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표를 돌려받지 못했다면 해임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대통령을 열심히 보좌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임됐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대통령실의 한 인사는 이렇게 해석했다. 윤 대통령이 참모들을 계속 신뢰하면서도, 언제든 그만두게 할 수 있다는 ‘중의적’(重義的)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라고. 그럼으로써 조직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또다른 전언으로는 윤 대통령이 “내 책상 안에 있으면 반려지, 굳이 반려해야 하느냐”고 말했다고도 한다. 사의를 밝혔는데 대통령의 재가가 없으니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유임을 언질받은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처지인 것이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됐다고나 할까.

이들이 모두 ‘정무직’이기 때문에 행정 절차상의 사표 수리 또는 반려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평소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취임 후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위 참모들이 일괄 사의라는 ‘정치 행위’를 한 것이다. 국민들은 이런 모습을 국정 쇄신의 과정으로 받아들였고, 어떻게 결론을 낼지 겉으로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면서도 매섭게 지켜보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어느 수석이 유임되고, 어느 참모가 그만두느냐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국정쇄신을 한다면서 고위직들이 모두 사의를 밝혔으면 그 인적개편의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투명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던 소통이 바로 그런 것이다.

쇄신한다고 했으니 모조리 사표를 수리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결과를 공유할 때 대통령과 국민들의 진정한 소통이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며 사표를 반려하든지, 아니면 사람을 바꿔 분위기를 일신하든지 분명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예의다.

대통령실은 사의를 표명한 참모들의 거취에는 입을 닫으면서 전임 비서실장의 퇴임식 모습은 조목조목 알렸다. 대변인실은 “대통령은 떠나는 비서실장을 청사 밖 차량까지 배웅했다. 비서실장이 타는 차량의 문을 직접 열고 닫아주며 차가 멀어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서면브리핑까지 했다.

고생한 참모를 마지막까지 배려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따뜻한 마음이 국민들에게 아름답게 비쳐지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걸 알려주는게 소통이다. 자랑하고 싶은 걸 떠벌리는 건 그냥 홍보다.

국민들이 진짜 알고 싶은 건 국정쇄신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는지, 쇄신의 일부분인 인적개편은 어떻게 매듭짓는지이다. 출입기자 입장에서도 대통령이 끓여주는 김치찌개를 먹는 것보다는 이런 궁금증 해소가 우선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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