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부산 41번 ‘인형 버스’타고 힐링 어떠세요?” 최구원·김상필 용화여객 기사
민락동~자갈치시장 2대 운행
중앙고 3학년 왕덕준 군 제안
라이언 등 인형 50여 개 장식
감성 문구·사투리 스티커 부착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
‘인형 버스’를 8개월째 운행하고 있는 용화여객 41번 최구원(70자 4125호·‘스마일 버스’), 김상필(왼쪽·70자 4131호·‘행복 버스’) 기사는 “삭막한 일상에서 승객들이 잠시 힐링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어! 시내버스를 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차 안에 온통 인형이 매달려 있어 인형의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웃을 일이 없는 요즘, 잠시 힐링이 됐습니다.”
최근 부산에서 41번 시내버스를 탄 한 승객은 깜짝 놀랐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온통 눈을 사로잡은 인형들에 놀라며 자리를 잡고 두리번거리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곳곳에서 다른 승객들도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 다양한 인형 사진 찍기에 신났다.
부산 수영구 민락동~부산역~자갈치시장을 오가는 용화여객 소속 차량번호 부산 70자 4125·70자 4131 2대의 시내버스 내부는 대충 세어도 각각 50개가 넘는 갖가지 인형으로 장식돼 있다.
라이언, 도깨비, 피카츄, 둘리, 메밀문, 판다곰, 산타…. 종류도 다양한 갖가지 인형이 예쁜 모습으로 천장이며 창문 위 철사에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고 얌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차량 내부도 인형으로 인한 승객의 위생을 위해 먼지 한 톨 없을 만큼 깨끗하게 청소돼 있다.
‘인형 버스’를 8개월째 운행하고 있는 주인공은 최구원(4125호·‘스마일 버스’), 김상필(4131호·‘행복 버스’) 기사다. 인형 버스의 출발은 부산 중앙고 3학년 왕덕준 군이 두 기사에게 제안해 시작됐다. 왕 군은 어릴 때부터 버스를 좋아해 늘 버스를 타기도 하고 신형 버스가 나오면 꼭 챙겨 본다고 한다. 그는 민락동에 살며 용화여객 버스를 늘 이용한다. 지난해 11월 또래를 모아 ‘버스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만들어 온라인에서 친교를 이어 가고 있다. 회비는 없으며 초등생과 직장인도 4명이 동참하고 있다. 120여 개 인형 대부분은 왕 군이 용돈을 아껴 마련했고, 해외 유학생 회원이 소포로 인형을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시내버스에 오르는 승객의 표정도 다양하다. 처음 타는 사람은 순간 놀라기도 하고, 자주 이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은 기사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버스 정보 앱으로 검색해 탑승하는 승객도 있다. 민락동에 사는 30대 엄마는 하루 3번 승차해 어린 딸과 인형 놀이를 하고 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매달려 있는 인형을 만져보기도 하며 간혹 인형을 달라고 떼쓰기까지 한다.
인형 버스를 제안한 부산 중앙고 3학년 왕덕준 군과 최구원 기사.
최구원 기사는 “2년 전 버스를 이용한 한 고교생이 버스가 너무 깨끗해서 좋다며 차내 인형을 걸어두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흔쾌히 수락, 지금까지 이어 와 명물 인형 버스가 됐다”고 전했다. 김상필 기사는 “삭막한 일상에 승객들이 이런 이벤트로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며 “특히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에서 탑승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좋아해 부산 홍보의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너무 좋다”고 크게 웃었다.
왕덕준 군은 “먼지가 묻어 지저분해질까 봐 자주 청소하며 휴일이면 몇 개씩 가져가 세탁해 다시 걸어두는 등 번거로운 일도 있지만 보기에도 예쁘고, 승객의 반응이 좋아 즐겁다”고 말했다.
또 인형 버스 2대에는 차량 앞부분에 ‘눈’ 스티커가 부착돼 있어 눈에 잘 띈다. 최근 두 기사와 왕 군이 준비한 좋은 글귀, 감성 문구, 작은 화분이 추가로 설치돼 인기를 끌고 있다. ‘소지품은 챙기고 근심 걱정은 두고 하차’와 부산 사투리 버전으로 ‘물건 단디 챙기고 근심 걱정은 버스에 두고 내리삐라’가 바로 밑에 붙여 있다. 광안리 관광객을 위해 ‘느그들 서울에 살제? 광안리에 가믄 맛집·야경 쥑인다’ 등 구수한 부산 사투리를 넣어서 스티커를 만들어 부착했다.
최구원 기사는 19년 경력에 ‘부산 시내버스 친절 기사’에 2회 선정됐다. 2022년에는 교통문화 향상 공로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그는 늘 차내 조용한 음악과 헤드 마이크로 승하차 승객에 감성어린 어투로 인사를 건넨다.
김상필 기사는 32년 경력의 모범운전자로 교통 통신원 17년 활동과 20년간 교통 봉사 활동을 했다. 특히 김 기사의 선친도 지금의 용화여객에서 1980년대 기사로 일했다. 본인(1990년~현재)에 이어 40, 33세 두 아들도 지난해부터 기사로 근무하고 있어 3대가 ‘용화여객맨’으로 자리매김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민락동에서 자주 타는 승객은 “늘 버스를 타면 기분이 좋은데 어느 날 서울 출장길에 감성 글귀를 보며 피로가 싹 해소됐고, 마음이 우울할 때나 지치는 일상에서 활짝 웃어주는 인형과 감성 글귀가 큰 힘이 되어준다”고 말했다.
시내버스 기사들이 승객을 위한 마음으로 시작한 ‘인형 버스’, 혹시 이 버스를 타면 친절 기사에게 감사 인사 한마디 전해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