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탄핵의 쓸모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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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탄핵의 나라였다. 사헌부와 사간원에 탄핵 기능을 두고 이들을 묶어 대간(臺諫)으로 불렀다. 대간은 ‘언론’의 역할을 맡아 ‘직을 걸고’ 최고 권력자의 비리를 고발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검색 사이트에서 ‘탄핵’을 입력하면 무려 6463건(한글 기준)의 기사가 나온다. 탄핵이 절정이던 성종 재위 동안 모두 2702명의 관료가 탄핵됐다. 연간 108명에 이르는 큰 규모다. 훈구파 권력자 한명회는 무려 107회 소추됐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관도 통째로 고발됐다. 인사권을 쥔 이조는 관리 임명 부정 등 의혹으로 209회나 상소에 올랐다.

특이한 점은 풍문 탄핵까지 허용됐다는 것이다. 비리 제보나 소문이 상당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입증할 수 없어도 탄핵 상소가 가능했다. 대신들은 ‘억울한 누명’을 주장하며 풍문 탄핵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간 측은 “풍문 탄핵을 못하게 하는 것은 언로를 막는 것”이라며 맞섰다. 최종 결정권자인 임금은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때로는 대간의 손을 들어주고 때로는 대신을 두둔했다.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대간은 멈추지 않았다. 본인이 파직당하는 경우도 잦았지만 관철될 때까지 상소를 거듭했다. 양반들은 국왕의 눈 밖에 나는 것보다 탄핵을 더 두려워했다.

조선의 탄핵 제도는 결과적으로 전제 군주나 권신의 출현 모두를 막았다. 탄핵을 당하면 파직은 물론 긴 논란과 수모의 시간을 감수해야 했다. 임금도 인사권에 제약받기 일쑤였다. 왕권과 신권 동시 견제라는 탄핵의 효용 덕분에 절대 권력과 부정부패가 발을 붙일 수 없었다. 500년이나 이어진 왕조의 역사가 대간 덕분이라는 학계의 분석도 있다. 물론 탄핵 제도가 살아 있는 권력을 견제할 때 태평성대가 지속됐지만 조선 말기 권문세가가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망국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지금 한국은 탄핵이 구가되는 나라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은 행정부를 상대로 탄핵소추권을 전방위적으로 행사하는 중이다. 국회 청원 사이트에서 지난달 20일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청원은 7일 동의자가 127만 명을 넘겼다. 대통령 탄핵 반대 청원까지 올라와 세 대결 중이다. 국민들은 두 번의 대통령 탄핵 소추를 겪었다. 탄핵의 쓸모에 대한 학습 효과가 있다. 권력의 오남용이 있다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길 바란다. 다만, 정치 없는 탄핵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탄핵 정국 속에 정치의 공백이 장기화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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