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채 해병 사망’은 사고가 아니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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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없다 / 제시 싱어

'사고'라는 단어에 대한 사용주의보
수많은 참사를 개인 탓으로 돌리고
책임 규명 막는 교묘한 암시로 악용

<사고는 없다> 표지. <사고는 없다> 표지.

우리는 흔히 말한다. “그건 사고였어요.” 나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우연히 일어난 일의 결과라는 의미다. 그러니 나를 탓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 하나. 과연 사고는 면죄부가 될까.

<사고는 없다>는 미국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죽는지에 관한 책이다. 교통사고에서부터 산업 재해, 재난 참사에 이르기까지 지난 한 세기 동안 벌어진 ‘사고’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사고’라는 단어가 어떻게 그것을 유발한 책임을 교묘하게 감추는지 밝혀낸다. 저자는 방대한 문헌과 데이터를 검토하고, 다양한 현장의 사례를 취재하고,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 활동가, 사고 피해자 및 유가족과 가해자를 인터뷰해 책을 완성했다.

현재 미국의 사고 사망자 수는 매년 2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이는 만석인 보잉 747-400 비행기가 날마다 한 대 이상씩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것과 같다. 뇌졸중, 알츠하이머, 당뇨, 신부전, 패혈증, 간 질한, 고혈압, 파킨슨병, 무차별 범죄, 자살 등의 이유보다 사고로 인해 더 많이 죽는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 공장에서 일어난 공장 화재로 무려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올해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 1주기, 이태원 참사 2주기, 세월호 참사 10주기, 마우나 리조트 참사 10주기, 대구 지하철 참사 21주기, 씨랜드 참사 25주기, 삼풍백화점 참사 29주기, 성수대교 참사 30주기를 맞는 해이다. 이 정도면 ‘참사의 나라’다.

이렇듯 사고가 넘쳐나는데, 저자는 “사고는 없다”고 주장한다. 불의의 ‘사고’라고 불리는 일 대부분이 무작위로 닥치는 게 아니라 예측과 예방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 바깥에서는 ‘사고’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 ‘사고’로 인한 죽음이나 손상이 우발적으로 일어나며 예견되거나 예방될 수 없다는 잘못된 암시를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암시는 교묘하게 책임자 규명을 방해한다.

그래서, 이른바 책임질 것이 있어 보이는 높으신 분들은, 우리가 ‘참사’라고 부르는 것들을 굳이 애써 ‘사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경우 책임을 면한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1주기에 외신 로이터는 “사임하거나 해임당한 정부 고위 관료는 한 명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한 나라의 장군은 제 장병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국회 선서마저 거부한다. 이런 행태를 꼬집기라도 하듯, 지난 4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의 인서트에선 세월호 참사 분향소 지붕에 적힌 ‘사고’라는 글자를 ‘참사’로 바꾸는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다.

책은 사고를 ‘인적 과실’(실수)과 ‘위험한 조건’(환경)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미끄러지는 것은 인간의 과실이지만,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는 바닥은 위험한 조건이다. 유조선을 몰다 암초에 부딪히는 것은 인간의 과실일 수 있지만, 유조선을 모는 사람에게 하루 12시간을 근무하게 한 것은 위험한 조건이다. 사고 예방법은 이러한 환경, 위험한 조건을 개선하는 일이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고치기보다 인적 과실을 탓하는 서사를 유포하는 방법을 택해왔다.”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어디선가 “그건 사고였다”라는 말이 들리면 이를 경고음으로 여기고, 다시 질문을 하는 계기로 삼으라고 권한다. “어떻게 된 일인가.” “왜 그런 것인가.”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 “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왜냐하면, 어떤 것도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고는 없다. 제시 싱어 지음/김승진 옮김/위즈덤하우스/456쪽/2만 3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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