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우리 마을을 영화 속으로 “레디~액션”
‘우리동네 영화만들기’ 현장
지역 주민 손으로 영화 제작
부산엔 마을 역사 기록 의미
지난 13일 서구 암남동 일대에서 ‘우리동네 영화만들기’ 촬영이 진행 중인 모습. 탁경륜 기자
지난 13일 서구 암남동 일대에서 ‘우리동네 영화만들기’ 촬영이 진행 중인 모습. 탁경륜 기자
“자자 카메라 롤. 레디~액션!” 좁은 동네 골목에 낯선 소리가 울려 퍼지자, 구경꾼이 하나둘 몰려든다. 주민들은 카메라를 보고 신기해하며 질문을 던진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겁니꺼. 촬영하는 거라예?” 뒤이어 덧붙인다. “우리 동네 잘 좀 찍어주이소.”
지난 13일 오전에 찾은 부산 서구 암남동 일대는 영화 촬영이 한창이었다. 길가에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설치됐고, 슬레이트를 손에 쥔 스태프와 붐 마이크를 번쩍 들어 올린 음향 스태프 등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이곳에선 암남동 주민들이 직접 기획한 영화 ‘내 아내를 찾아서’의 촬영이 진행됐다. 영화의전당이 주관하는 ‘우리동네 영화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내 아내를 찾아서’는 결혼기념일조차 까먹는 무심한 남편 ‘재웅’이 집을 떠나버린 아내 ‘영애’를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서구에서 평생을 거주한 ‘지역 토박이’인 이정향 감독은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촬영 장면을 유심히 살폈다. 커피숍을 운영하는 그에게 지금껏 영화는 ‘보는’ 것일 뿐 직접 ‘(제작)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배우를 향해 “표정이 너무 어둡다”며 연기를 지도하는 모습에선 전문 영화인의 면모가 뿜어나왔다. 배우로 데뷔한 마을 주민들도 진지하기는 매한가지. 오르막길을 걷는 단순한 장면에서조차 난간을 잡을지 말지를 고민하며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영화의전당이 주관하는 ‘우리동네 영화만들기 프로젝트’는 2021년부터 시작된 시민참여 프로그램이다. 마을 공동체가 직접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상영까지 맡는다. 주제 선정부터 장소 섭외까지 주민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다. 암남동 주민들로 구성된 영화 제작 동아리 ‘천마산황금꼰대들’은 지난달부터 시나리오 작업, 연기, 촬영 등 영화 제작을 위한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기본 교육을 마치고 지난 13일 오전 6시부터 지난 14일까지 저녁까지 2회차 촬영을 진행했다. 감독, 배우, 촬영 등의 역할을 각자 나누고 지역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장소를 직접 촬영지로 선정했다. 송도 바닷가, 이태석신부기념관, 알로이시오기지, 칠보사 등의 지역 명소를 포함해 골목길, 황톳길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다.
이정향 감독은 “이렇게 예쁜 골목길과 아기자기한 집들도 곧 재개발이 되면 싹 다 아파트 단지로 변할 거다. 그전에 동네의 예쁜 풍경을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이 장소를 선택했다”며 “동네에 좋은 곳이 너무 많은데 개발을 이유로 하나둘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도 영화 촬영에 호의적인 모습이었다. 이날 촬영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촬영팀을 신기해하면서도 정겹게 반겼다. 한 주민은 촬영장 풍경이 신기한 듯 한참을 구경하다가 맘 편히 촬영하라며 자신의 오토바이를 다른 곳으로 이동 주차하는 배려도 보여줬다. 또 다른 주민은 “이렇게 이쁜 곳 촬영하면 좋지”하며 즉석에서 촬영 장소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영화를 향한 주민들의 열정과 호의에 감동한 듯 전문배우 김인하 씨는 옷이 땀으로 흥건해질 만큼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했다.
2021년부터 지난 3년간 ‘우리동네 영화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총 18편의 마을 영화가 제작됐다. 영도구 깡깡이 마을, 영도구 흰여울마을, 서구 샛디산복마을 등 부산의 이곳저곳에서 단편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가 촬영됐다. 지난달에는 마을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백세발레단'이 이탈리아에서 열린 ‘페사로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그동안 보기만 했던 영화를 직접 만들어볼 기회를 누린다는 점에서, 지역에서는 사라져가는 마을의 역사를 영화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프로젝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이 제작한 영화는 오는 10월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비프에서 상영된다. 11월에는 마을 자체 상영회가, 12월에는 영화의전당이 제작한 영화가 상영되는 통합상영회가 예정돼 있다.
'우리동네 영화만들기' 촬영이 진행 중인 모습 탁경륜 기자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