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구별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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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개근하면 거지’ 놀림 말 유행
초등생들도 '구별 짓기' 세태
부의 정도 따라 상대 가르기

먹고 입는 것, 휴식까지 양극화
아이 때부터 어른들 시선 공유
가진 것 기준 되는 세상 변해야

‘개근 거지’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초등학생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로 언론에 보도된 단어인데, 뜻이 기막히다. 해외로 여행을 다니지 않고 꼬박꼬박 출석해서 ‘개근’을 받는 것이 집안의 경제 상황을 드러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신조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사람들 중에는 곧 태어날 아기를 품고 있는 임신부가 있었는데, 그녀는 이런 이야기가 이제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 테이블에는 몇 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갈까 말까 한 사람들만이 앉아 있었다.

요즘 아이들이 영악하다는 말로 이 상황을 퉁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건 분명 어른들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잘 벌고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망. 결국엔 개근 거지라는 말을 만들어 내면서까지 자신의 그룹과 상대의 그룹을 구별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단어다. 사실 개근 거지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보더라도, 이러한 맥락과 현상은 처음이 아닐 것이다. 아파트의 브랜드로, 자동차의 이름으로, 입고 다니는 옷의 가격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어린아이들마저도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진다는 걸 익히 보고 들어왔다.

대학생 때 학부의 수업을 들으며 피에르 부르디외라는 사회학자의 ‘구별 짓기’ 이론에 대해 공부한 적 있다. 부르디외는 문화 자본이 많은 사람들이 사회 내에서 취향을 구성하고, 상대적으로 자본이 적은 사람들은 미술 작품 등의 문화 자본에 접근성이 떨어져 소속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20세기 프랑스 사회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은 구별되었다. 오늘날도, 그리고 한국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경험과 가능성을 택할 수 있는 자본을 가진 이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해외여행이나 캠프로 보낼 수도 있다. 그러면서 주류 문화가 형성되게 된다. 아이에게 경험을 시켜주는 것이 부정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재력이 자본의 폭을 넓히면서 자연스럽게 계급이 나눠진다는 뜻이다.

또한 이런 단어가 나온 배경에는 더 이상 성실을 대우해 주지 않는 풍조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성실 자체가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고 맡은 바를 착실하게 해내면 인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대가 점점 변하고 있는 듯하다. 성실을 대우하기에는 물질이 너무 쉽게 큰 권력을 거머쥔다. 성실을 지키는 것보다 성적이나 수치, 가시적인 결과물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학교는 작은 세상이고, 출석은 그 세상이 요구하는 학생으로서의 의무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의무가 후순위가 되었고 그 자리에 물질이 들어선 시대. 2024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런 시대를 사는 20대가 하기에는 낡고 고루한 말일 수 있으나, 나는 어른들부터 이런 구별 짓기의 세상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질의 힘은 너무도 강력해서 가끔 사람의 존엄보다 우위를 점하기도 한다. 사람을 능력과 물질로 구별 짓고 내집단과 외집단을 나눠버리는 순간 외집단에 있는 사람들은 완벽한 타인이 된다. 우린 그런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향한 물질적인 잣대는 결국 스스로에게 되돌아온다. 우리 역시 그 족쇄에 걸려 넘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와중에 개근 거지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는 한 가지 포인트는, 이 단어가 휴식조차 쉽게 누릴 수 없는 한국의 현주소를 짚고,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현상을 보도한 외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개근은 여행이나 휴식을 위한 시간과 돈이 없어 일편단심으로 학습과 수입 창출에만 전념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여행은커녕 가족들과 주말 시간도 함께 보낼 수 없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노동 환경이 불안정할수록 휴식은 점점 더 멀어진다. 결국 휴식을 위해서도 물질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뜻이다.

주변에서 아이를 낳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출산과 육아의 현실을 듣게 된다. 아기용품의 가격대뿐만 아니라 교육 방식, 먹이고 입히는 모든 것에 양극화가 심하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진 것에 따라서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 사회는 닿을 수 없는 이상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가난과 부유가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가져야 할 한 가지 희망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시선을 따르기에 어른들이 변화하면 된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구별 짓기에서 탈피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가진 것으로만 평가받고 놀림받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당장 우리부터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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