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 vs ‘필요성’… 퐁피두 둘러싼 같은 듯 다른 2개 토론회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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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긴급 토론회’ 마련하자
부산시도 급히 맞불 토론회 개최
한편에선 “막대한 운영비” 우려
반대 측 “일반 미술관 수준” 반박

세계적인 미술관, 프랑스의 퐁피두센터 분관 부산 유치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참여연대와 인본사회연구소가 27일 오전 11시 부산참여연대 강당에서 ‘이기대 공원 퐁피두 미술관 분관 유치 진단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에 뒤질세라 부산시는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 부산현대미술관 2층 회의실에서 ‘세계적 미술관 부산 유치 기대 효과 및 활성화 전략 토론회’를 열었다. 동시간 대 같은 주제로 열린 토론회였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달랐다. 한쪽에선 여러 우려와 함께 계획 재검토를 요구했고, 다른 한쪽에선 유치의 필요성과 그에 따른 조언이 이어졌다.


지난 27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퐁피두 분관 유치 진단 긴급 토론회’에서 정준모(가운데) 미술평론가가 발언하고 있다. 탁경륜 기자 지난 27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퐁피두 분관 유치 진단 긴급 토론회’에서 정준모(가운데) 미술평론가가 발언하고 있다. 탁경륜 기자

■“연간 운영비 250억 넘을 것… 돈 먹는 하마”

최근 부산시가 추진 중인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와 관련해 시민단체가 유치의 적절성을 따져보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부산시의 밀실 행정, 막대한 운영 경비 부담 등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부산참여연대, 인본사회연구소는 지난 27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참여연대 강당에서 ‘이기대 공원 퐁피두 미술관 분관 유치 진단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남송우 고신대 석좌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최승현 독립큐레이터, 박찬형 부산참여연대 총괄 본부장이 참석했다.

토론회는 같은 날 같은 시각 부산시가 주최한 토론회에 대한 지적으로 시작됐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민단체가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힌 이후 부산시가 급하게 다른 토론회를 열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며 “급조한 것도 문제지만 퐁피두 센터 건립에 반대하는 전문가와 단체가 하나도 없는 토론회를 연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지낸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퐁피두 센터 유치·운영 비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정 평론가는 “스페인 말라가에 있는 퐁피두 분관은 올해부터 2029년까지 로열티로 매년 약 40억 6000만 원을 지불하고 2030년부터는 매년 51억 1000만 원을 낸다”며 “5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할 경우 내야 하는 로열티가 점점 늘어나는데 이를 어떻게 충당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부산시가 연간 운영비를 100억 원대로 추산하지만 실제로는 적어도 250억 원 정도는 들 것”이라며 “루브르 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재정자립도가 20~25% 수준인데 입장권 수익으로 운영비를 유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약 충당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시민 혈세로 만든 미술관에 시민들이 고가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퐁피두 센터를 건립할 경우 기존에 운영 중인 미술관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정 평론가는 “퐁피두의 운영 방식을 부산시립으로 할 건지, 별도 법인을 둘 건지,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해봤는지 모르겠다”며 “퐁피두와 연계하고 싶다면 순회 전시회를 신청하면 분관을 짓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작품을 볼 수 있다. 밀라노, 도쿄에서는 이미 순회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최 큐레이터는 10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퐁피두 센터 건립 비용을 기존 미술관에 투입한다면 부산 미술의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봤다. 최 큐레이터는 “부산시가 퐁피두를 유치할 만큼의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준다면 부산에 있는 시립미술관들도 충분히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있다. 건립 예산의 절반만 양쪽 미술관에 투자한다면 세계적인 미술관이 될 것”이라며 “정말 퐁피두와 교류해야겠다면 프랑스에도 부산시립미술관 분관을 똑같이 세우면 된다. 그게 호혜적인 관계”라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퐁피두 센터 유치 과정에서의 밀실 행정, 동서 문화시설 격차 심화, 이기대 일대의 환경 파괴 등을 우려했다.

좌장을 맡은 남 교수는 부산시의 문화행정 철학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남 교수는 “지금 부산바다미술제 등을 보면 예산이 부족해 제대로 된 기획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진 것을 발전시킬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새로운 것만 들여온다는 건 문화정책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라며 “아직 시립소극장이 없어 힘들어하는 연극인들, 수십 년째 시립문학관 건립을 요구 중인 문학인들 등 지역문화인들이 모두 어우러질 수 있는 문화행정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7일 오전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부산시 주최로 열린 '세계적 미술관 부산 유치 기대효과 및 활성화 전략 토론회' 모습. 부산시 제공 지난 27일 오전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부산시 주최로 열린 '세계적 미술관 부산 유치 기대효과 및 활성화 전략 토론회' 모습. 부산시 제공

■“입장권 수입 고려, 기존 미술관 운영비 수준”

퐁피두센터 분관 부산 유치에 대한 세간의 우려는 ‘연간 운영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지역 예술인과는 어떻게 상생할 방안을 세우고 있는지 등이다. 그외 공청회나 토론회 한번 없이 밀어붙이는 행정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27일 부산시가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토론회는 이를 불식시키기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 미술관 부산 유치 기대 효과 및 활성화 전략 토론회’라는 제목처럼 부산시가 현재 구상 중인 ‘세계적 미술관’의 실체를 일부지만 처음 외부에 공개하고, 시 산하 미술 관련 기관의 수장들로부터 구체적인 조언을 청취하는 자리로 향후 이런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데 공감한 자리였다.

이날 ‘세계적 미술관 건립 방향과 지역 활성화’를 주제로 발제한 오재환 부산연구원 부원장은 “현재 부산에선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미술의 경우 1998년 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 2018년 개관한 부산현대미술관 두 개의 공립미술관밖에 없어서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며 퐁피두센터 분과 유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 부원장은 이어 “이제는 단순히 미술관뿐 아니라 시민들의 휴양 공간이기도 하고, 관광지로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클러스터화 된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퐁피두센터가 가진 여러 기능에 주목했다. 전시 기능 외에도 퐁피두가 가진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 그리고 다양한 계층의 교육 프로그램, 작가와 연구자가 특정 공간에 머물면서 창작 작업에 몰두하도록 하는 레지던시(창작스튜디오) 등도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부산이 계획하는 세계적 미술관 부지는 이기대 공원 일원 3만㎡이다. 총사업비는 1081억 5189만 원으로, 부지 매입비를 제외한 건립 비용이다. 연간 운영비는 125억 8300만 원이며, 이 중 22억 3200만 원이 행정 운영 경비, 103억 5100만 원이 사업 및 일반 운영비이다. 연간 총수입은 입장료, 교육 프로그램, 임대, 운영비를 합해 50억 1400만 원으로 추산했다. 시의 수요추정 결과, 미술관 개관 연도(2031년) 기준으로 연 46만 2052명의 관람객이 퐁피두센터 분관을 찾을 것이라고 시는 밝혔다. 이 경우 연간 운영비와 총수입 차액은 약 76억 원으로, 시는 기존 미술관에도 거의 비슷한 비용이 들어가고 있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날 토론자들은 대체로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의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퐁피두센터 분관의 성공과 지역 예술 인프라와의 상생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조언들을 보태기도 했다.

김승호 동아대 현대미술학과 교수는 “부산 인구 340만 명이면 16개 구·군에 하나씩 미술관이 있어도 모자랄 판이어서 숫자적 부족은 인정한다”며 “기존 두 곳의 부산 공립미술관 소장품과 퐁피두 작품을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와 미술관 전시 기능 못지않게 퐁피두의 강점인 교육 프로그램, 도서관과 영화관 등 복합문화공간 기능에도 주목할 것”을 당부했다.

이상호 경성대 예술종합대학 학장은 “지역 미술계와 상생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특히 청년 작가들의 전시 공간이 태부족인 현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새로운 미술관엔 1000평 정도 규모 전시장은 꼭 필요하다”고 전했다.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은 “다양한 미술관이 모이는 문화 클러스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시대적 화두”라고 언급하면서도 “퐁피두 콘텐츠만 수입하는 파이프가 아니라 양방향 파이프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협업적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아시아, 부산 콘텐츠를 만들어서 퐁피두로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장은 “퐁피두 설립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려면 무엇보다 콘텐츠 구성에 치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기존 기관과 중복되지 않는 프로그램의 차별화와 동시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전시 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 전시 외에도 14만 점에 달하는 퐁피두 소장품 강점을 활용한 전시 개발과 국내 퐁피두 미술관 개관을 준비할 국내 전문 인력팀 구성이 초기 단계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성호 부산국제건축제조직위 집행위원장은 “퐁피두 소장품도 중요하지만 미술관 자체 건축물의 가치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빌바오 구겐하임은 프랑크 게리, 테이트모던은 헤르조그&드 뫼롱, 루브르 아부다비는 장 루벨이 설계한 것처럼 우리도 공모를 진행하되 100% 현상 공모보다는 지명 공모를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박희연 부산시 문화예술과장은 “곧 MOU 체결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MOU를 체결한 뒤에는 유치나 운영에 대한 본계약(MOA)을 2025년 12월까지 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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