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이야깃거리 넘치는 ‘북구 소요’ 어때?
■소요북구 / 김정곤 지음
북구, 오랜 역사에 아름다운 자연
제대로 인정 못 받는 현실 아쉬워
지도까지 직접 만든 ‘걷기의 인문학’
부산 북구 만덕동 석불사 대웅전 뒷편 암벽에는 29개에 달하는 마애석불이 새겨져 있다. 김정곤 제공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돌아다니다 보면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 깨닫게 된다. 특히나 잘 안다고 착각했던 우리 부산에 대해서는 미안한 정도로 모른다. 얼마 전 큰비가 내린 다음 날 지인들과 화명생태공원을 걷다 부산에 이런 멋진 곳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어느 날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내가 사는 고장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대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이런 바람이 동서남북 종횡무진으로 불어왔으면 좋겠다.
<소요북구>는 부산의 북구를 소요한 책이다. ‘소요(逍遙)’는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닌다는 뜻인데, 소요를 즐기기 위한 조건이 있다. 우선 달성할 목적이나 목표를 내려놓아야 한다. 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걷기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만들어 주기에 인문학과 밀접해 있다.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걸어라’를 실천한 책이라 하겠다.
사실 북구는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 아름다운 자연생태 환경을 자랑하지만 부산에서는 상대적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책은 걷기 위주라 북구의 지리를 머릿속에 대략 그리고 읽으면 좀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 북구는 구포동, 덕천동, 만덕동 3개의 동이 차례대로 개발됐다. 또한 90년대 말부터 화명신도시가 개발됨에 따라 화명동, 금곡동 일대가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했다. 북구의 길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품고 있는 게 특징이다. 율리 바위그늘집 유적, 고분군과 유물들, 만덕동사지, 구포장터 만세운동과 선비마을 등 역사의 흔적과 문화의 향기가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금곡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효열로를 따라 걷다 보면 동원마을, 화정마을, 율리마을 같은 자연마을을 만난다. 동원마을은 낙동강 동쪽에 원(숙박시설)이 있던 곳이어서, 화정마을은 꽃과 정자가 많다는 뜻에서 유래됐다. 밤나무가 많은 마을이어서 율리로 불린다. 이름 하나하나에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화명생태공원 북쪽 구역에는 명품 메타세쿼이아 산책길이 나타나 강물과 함께 걷는 느낌이 든다. ‘메타세쿼이아 가지들이 손을 맞잡은 산책길에 노을이 내려앉으면 금빛으로 물든 길 위에 나무들의 긴 그림자가 마치 피아노 검은 건반처럼 깔린다’라고 시인이 되어 노래한다.
화명동은 화산 아래 자리 잡았다. 화산은 금정산의 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명산으로 꼽힌다. 새벽 일찍 화명생태공원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화산의 암봉이 새벽 햇살을 받아 환하게 밝아오는 모습이 기가막히단다. 북구는 윤상은, 장우석 같은 분들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이들은 조선 독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구포사립구명학교를 세우고, 국내 최초 민간 은행인 구포은행을 설립했다. 길을 걸으며 오늘이 있게 만들어 준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장소 가운데 만덕 병풍암 끄트머리에 있다는 석불사에 꼭 가고 싶어졌다. 석불사 법당은 모두 돌로 만들어졌다. 대웅전 뒤로 펼쳐진 거대한 암벽 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을 자랑한다. 암벽에 새겨진 불상은 모두 29개로 단일 사찰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마애석불이다. 대부분의 마애불은 한국전쟁이 막 끝나고 사람들이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만들어졌다. 이 땅에서, 지구상에서 전쟁의 먹구름이 사라지길 마애불 앞에서 소망한다.
직접 발로 걸으며 확인한 여러 둘레길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와 함께 지도를 첨부했으니 이 멋진 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어진다. 기회가 되어 북구 전문가인 저자와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들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북구청에서는 트레블로드라고 북구를 걷는 코스를 개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맨 뒤편 부록에는 치유, 이음, 자유, 소망, 추억, 기다림, 위로, 그리움, 동행, 어울림까지 이름을 붙인 ‘북구의 노을 10경’이 보너스처럼 들어 있다.
매 꼭지 끝에는 옛날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생활상을 친숙하게 느끼고 상상하도록 짧은 저자의 자작 소설이 들어 감칠맛이 난다.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북구의 길을 걷는다면 소요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북구의 매력도 함께 만끽할 수 있겠다. 이번 주말 ‘북구 어때?’라고 물어오는 책이다. 김정곤 지음/빨간집/296쪽/1만 8000원.
<소요북구>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