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공간의 권력을 시각화하다
■ 박준범 '네 개의 비슷한 모퉁이'
박준범 '네 개의 비슷한 모퉁이' 영상 장면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종이 인형에 드레스도 입혀보고, 머리도 긴 금발 머리로 바꾼다. 싫증 나면 한복으로 바꾸고 올린 머리를 이리저리 붙이는, 아이들 장난감 ‘종이인형 꾸미기’가 있다. 더 발전해 ‘모루’(철사에 털실을 촘촘히 감아 만든 끈, 영어로는 fur wire)로 인형을 만들어 꾸미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갖가지로 디자인한 옷을 부속재로 파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이다. 신세대들은 가방에 이런 것쯤 하나 안 붙이고 다니는 이들이 없다.
박준범의 ‘네 개의 비슷한 모퉁이’(싱글 채널 비디오, 2분 50초, 2015년)는 만들기 혹은 꾸미기에 관한 인간의 욕망을 영상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종이인형’이나 ‘모루형’ 꾸미기와 달리 성인용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지고 있는 혹은 가지고 싶은 공간을 어떻게 잘 꾸미나 고민하는 영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상이 묘하게 그렇게만 해석되지 않아 감상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시작은 변형하려는 공간을 찍은 사진에 부분적으로 드로잉한 것을 교묘히 결합하여 공간 구조(기둥, 벽, 창문 등)와 갖가지 물품(작업대, 자재 등)대로 자른 도면(설계도가 아닌 사진)을 걷어낸다. 계속 걷어낸다. 제목처럼 네 개 모퉁이는 발견하기 어렵다. 비슷한 모퉁이, 그리고 출입문이 있는 공간 등 여러 가지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감상자에게 원래 상태의 공간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즉 감상자는 제시된 공간이 어디가 원래 상태인지를 알기 어렵게 작가는 만들었다. 이런 공간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감상자는 열심히 영상을 보고 해석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러다, 영상 중간쯤 어디인가부터 손은 이제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도면을 붙여 나간다. 계속 붙인다. 가만히 보면 걷어냈던 것을 다시 붙이고 있다. 영상에 집중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유일하게 자연색 그대로 등장하는 손의 움직임에 집중하면 된다. 그러고 나면 이 영상 구조는 손으로 걷어내고 그것을 다시 역순으로 붙이는 장면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준범은 교묘하게 공간을 변형하려는 시도를 영상으로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교묘하다고 해서 완벽하게 분할된 것도 아니고, 자른 공간이 일치되지도 않고 미묘한 오차를 허용하면서까지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먼 옛날부터 공간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전쟁의 역사는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공간(땅)을 지배하는 기록의 하나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전쟁 형식을 바꿨다. 21세기는 건축구조 혹은 건물의 실내장식 바꾸기로 권력을 드러낸다.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 김경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