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멸구·폭우·가격 폭락…벼농가 ‘잔인한 가을’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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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벼멸구 피해 잇따라…전국 3번째
폭우 인한 피해도 여전…수발아 현상도
쌀값 폭락 조짐도…벼 재배 농민 ‘울상’

경남 진주시 금곡면의 한 논. 벼멸구 피해를 크게 입었다. 진주시농민회 제공 경남 진주시 금곡면의 한 논. 벼멸구 피해를 크게 입었다. 진주시농민회 제공

수확과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지만 벼 재배 농민들의 얼굴에는 시름이 가득하다. 극한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데 이어 벼멸구 등 병해충이 대규모로 번지며 2중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여기에 쌀 가격도 지난해 대비 하락할 것으로 예상돼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8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벼멸구 피해 농지는 전국적으로 3만 4140ha에 달한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17배 규모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은 전남으로, 1만 9603ha에서 벼멸구 습격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남 지역도 피해를 비껴가지 못했다. 경남도농업기술원 등에 따르면 경남 지역 벼멸구 피해 농지 면적은 4190ha로, 전국에서 3번째로 피해가 컸다. 지역별로는 하동군이 700ha로 가장 많았으며, 진주 600ha, 창원 560ha 등으로 뒤를 이었다.

벼멸구는 벼의 줄기에서 즙액을 먹는 병해충으로, 벼멸구가 생기면 벼가 잘 자라지 못하고 심하면 말라 죽게 된다. 벼멸구가 심한 농지에는 볏대가 폭탄을 맞은 듯 주저앉는 ‘호퍼번(hopper burn)’ 현상까지 나타난다.

벼멸구는 주로 6∼7월 중국 남부에서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로 날아온다. 해마다 지역별로 조금씩 나타나지만, 올해는 피해 규모가 유독 큰 편이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9월 중순까지 지속된 폭염으로 벼멸구 부화일이 단축되고 산란 횟수의 증식 밀도가 증가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경남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벼멸구 방제 작업이 펼쳐지고 있지만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정찬식 경남도농업기술원장은 “향후에는 올해와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시군 병해충 담당자들이 현장에서 정밀한 병해충 예찰과 방제 지원을 하도록 역량을 강화하고, 방제 효율을 높여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 폭우로 도복 현상이 발생한 논. 최근 쓰러진 벼가 물에 잠겨 낱알에 싹이 트는, 이른바 ‘수발아’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진주시농민회 제공 지난달 중순 폭우로 도복 현상이 발생한 논. 최근 쓰러진 벼가 물에 잠겨 낱알에 싹이 트는, 이른바 ‘수발아’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진주시농민회 제공

농민들을 힘들게 하는 건 벼멸구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중순 전국적인 호우로 1만 4000ha가 넘는 논이 물에 잠기면서 벼 쓰러짐(도복) 현상이 생겼다. 아직 피해 복구도 제대로 안 됐는데 벼멸구까지 덮친 셈이다.

특히 최근에는 쓰러진 벼가 물에 잠겨 낱알에 싹이 트는, 이른바 ‘수발아’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수발아 현상이 생기면 수확량이 줄고 상품성이 떨어져 제값을 받지 못한다.

진주의 한 벼 재배 농민은 “수해에 이어 벼멸구까지 확산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특히 벼멸구가 심한 곳은 올해 수확을 포기해야 할 정도다. 여기에 최근 들어 깨씨무늬병 등 다른 병해충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답답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농민들을 더욱 절망에 빠뜨리는 건 올해 쌀값까지 폭락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9월 25일 자 전국 평균 산지 쌀값(작년산)은 80kg들이 한 가마당 17만 459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만 808원보다 13.1% 떨어졌다. 앞서 정부가 지난해산 20만t을 매입한 데 이어 사상 최초로 올해산 10만 5000t을 ‘사전 격리’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쌀값은 반등하지 못했다.

올해 쌀값이 20만 원을 회복하려면 지난달 산지 쌀값 대비 15% 정도 급등해야 하는데 농민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 진주시농민회 등에 따르면 올해 진주 지역 미곡종합처리장(이하 RPC)의 벼 ‘우선 매입 지급금’ 단가는 40kg 당 4만 원 정도에 그쳤다. 지난해 5만 원 대비 1만 원 하락한 수치다. ‘우선 매입’이다 보니 차후 가격이 오르면 재정산을 해주지만, 일반적으로 우선 매입 지급금이 한 해 쌀값의 기준이 되다 보니 농민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진주시농민회 전주환 사무국장은 “지난해 수확기 쌀값이 20만 원일 때도 경남 농민의 한해 수익은 500만 원 안팎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떨어지면 농민은 적자를 보고 농사를 짓게 되는 거다. 지난해 정부에서 약속한 산지 쌀값 20만 원 유지와 수급 안정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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