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X' '저거' '당신' 감정 싸움에 국감 정회… '무용론' 팽배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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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모욕적 질의로 적대감 표출
정부 측 전례 없이 강한 톤 대응
저질 공방에 고성·충돌 일상화
의원·공직자 간 최소한 존중 없어
지엽적 문제 집중·견제 본질 훼손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시작부터 파행으로 얼룩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정부 측 증인들에 대한 모욕적인 질의로 현 정부에 대한 적의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이에 정부 측 인사들도 전례 없이 강한 톤으로 맞서면서 고성과 충돌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국정을 감시한다는 본질 대신, 답변 태도·표정·말투 등 지엽적인 문제를 둘러싼 신경전만 고조되면서 해묵은 국감 무용론이 초기부터 팽배해지는 분위기다.

지난 8일 열린 국회 국방위위원회의 국방부 감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답변 태도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전 몇 차례 지적한 바 있는 이른바 ‘충암파’ 모임을 집중 추구했고,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등 충암고 출신들은 ‘관행적인 모임’이라는 기존 답변을 되풀이했다.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전무했다. 그러나 야당의 ‘계엄 준비 모임’이라는 의혹 제기에 불만을 표출한 여 사령관은 자신의 답변을 제지하는 민주당 부승찬 의원이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라고 고성을 지르자 “왜 고함을 칩니까”라고 맞섰고, “신원식 전 장관의 체력과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적이 없느냐”는 같은 당 김민석 의원의 인신공격성 질의에 “굳이 대답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답했다. 감정 섞인 질의에 날 선 답변으로 응대하는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국감장 분위기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에 민주당 황희 의원은 여 사령관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군복을 입었으면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장관의 책임 같다”고 김 장관을 겨냥했지만, 김 장관은 “군복을 입었다고 할 얘기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건 더 병X이라고 생각한다”고 비속어로 받아치는 장면까지 나왔다.

같은 날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민권익위원회 대상 감사도 이런 감정 싸움으로 시작 40분 만에 정회되는 파행을 빚었다. 민주당 유동수 의원은 권익위 정승윤 부위원장이 지난 9월 내부 회의에서 ‘저를 고발한 야당 의원들 전부 고소·고발할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정 부위원장이 해당 발언 사실을 인정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헌법기관인 국회를 위협하는 발언을 했다”며 국민의힘 소속 윤한홍 정무위원장에게 대응 조치를 요구했고, 윤 위원장이 ‘여야 간사 간 협의하라’라 회의를 이어가려 하자 “이러면 국정감사를 못 한다”며 반발하면서 회의가 중단됐다. 오후 속개 후에도 야당 의원들은 “오전 회의 때 정 부위원장이 웃고 있었다”고 태도를 지적하고, 정 부위원장은 역으로 야당 의원이 자신을 향해 “저거 봐라”라고 말했다며 사과를 요구하며 맞섰다. 이후 정 부위원장이 회의 중 웃었는지, 신 의원이 정 부위원장을 ‘저거’라고 지칭했는지 따지는 데에만 수십 분의 시간이 소요됐다.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에서는 민주당 김우영 의원이 최철호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을 ‘당신’이라고 부르며 반말을 섞어가면 질의하자 최 이사장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의원 간 고성이 오갔고,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방송통신위원회에 파견된 검경 수사관 10여명을 증인석에 일렬로 세운 뒤 “여러분은 정권의 도구”라고 싸잡아 매도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서는 민주당 윤종군 의원이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의 허위 매물 실태를 지적한다며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의 관용차를 매물로 올려놓은 사실을 공개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실정법 위반”이라고 반발했고, 외교통일위 국감에서는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이 부산엑스포 유치전 관련 외교부의 ‘3급 비밀’ 문건을 대형 스크린에 띄워 공개하는 일도 벌어졌다.

여당에서는 “현 정부에 타격을 입히려는 목적에 눈이 멀어 공직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이 갑질과 고압적 태도를 서슴지 않는다”며 야당 의원들을 비판하는 반면, 야당에선 “일부 공무원이 정권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려 전례 없이 공격성을 보이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반박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론 비판에도 양측이 전혀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국감 끝까지 이런 ‘저질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국감 무용론을 스스로 부채질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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