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통령 시정연설
제22대 국회가 첫 국정감사를 끝내자마자 31일 677조 4000억 원 규모의 2025년도 정부 예산안과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공청회를 시작으로 예산안 심사 일정에 들어갔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은 ‘예산 국회’ 시즌을 맞아 국회에서 시정연설(施政演說)을 한다.
시정연설은 국가 원수나 정부 수반이 국정과 관련해 행하는 연설을 말한다. 정부 정책의 기본 방침, 정강, 기본 과업 등을 담는다. 1987년 개헌으로 도입된 시정연설은 대통령이 취임 첫해 국회에서 하고, 이듬해부터는 국무총리가 대통령 연설문을 대독하는 게 관례로 자리 잡았다. 또 국회에서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은 대통령이 예산 편성에 관한 정부 입장을 알리는 한편 여야 의원들에게 예산안을 잘 심사해 제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자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부터 4년 연속 국회 연설을 통해 새해 예산안 내용을 설명한 이후 지난해까지 11년간 매년 시정연설이 이뤄지면서 관행으로 굳어졌다. 5년 연속 시정연설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앞두고도 연설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2년과 지난해 국회를 찾아 예산안 연설을 했다. 대통령이 직접 말하는 것이 국회를 존중하고 대국민 소통에 적극적이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으며 신속한 예산안 통과를 호소하는 데도 힘이 실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박 대통령 이전에는 예산안 시정연설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한 번도 시정연설을 하지 않았다. 노태우,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은 각각 한차례에 그쳤다.
윤 대통령이 오는 4일로 예정된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렇다면, 야당이 국회에서 고성과 폭언 등으로 대통령을 모욕하거나 탄핵 얘기를 꺼내는 걸 우려한 게 분명하다. 2022년 10월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더불어민주당의 보이콧으로 의미가 반감됐다. 지난해 10월 연설 때는 야당 의원들이 피켓과 검은색 마스크 시위를 벌이고, 한 의원은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자 “이제 그만두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만일 이번에 총리에게 대독을 맡길 경우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 전통은 12년 만에 깨진다. 윤 대통령이 올 9월 2일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사실까지 소환한 비난 여론이 예상된다. 대통령이 위기를 느낄수록 불신을 더 키우지 말고 국회에서 야권을 적극 설득하며 협조를 구할 일이다. 그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민주당도 공식 행사에서만큼은 예의를 지켜야 마땅하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