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신고 위해 경찰 서식 고발장 썼는데 벌금?
초과근무수당 부정 수령 동료
고소하려 주민번호 등 기재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유죄
부산일보DB
부산에서 직장 비위 행위를 신고하는 고발장을 수사기관에 제출하면서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기재한 것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1심 판단이 나왔다. 법원의 기계적인 법률 적용으로 내부 고발자를 범죄자로 몰아 공익 고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 중이던 A 씨는 같은 기관에서 근무 중인 B 씨가 초과근무수당을 부정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고발하기로 마음먹었다. 2019년 4월 6일 A 씨는 해당 기관에서 발송한 ‘일반건강검진 대상자 알림’을 통해 B 씨의 주민등록번호, 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게 됐다. 이후 2021년 1월 4일 B 씨의 동의를 받지 않고 경찰서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A 씨가 작성한 고발장은 경찰 민원포털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공식적인 서식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B 씨는 A 씨를 오히려 경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개인정보 누설에 해당한다며 기소했다. 부산지법 형사12단독 지현경 판사는 지난달 24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해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A 씨는 피고발인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으로 법 위반의 고의가 없고 공익적 목적으로 정당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공익신고를 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입력하려면 당사자의 동의를 받거나, 법 위반이 되지 않을 만큼의 정보를 입력하고 나머지는 수사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A 씨의 행위는 ‘개인 정보를 받은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개인정보보호법 19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2022년 11월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농협의 한 조합원 C 씨가 조합장의 비위 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CCTV 자료나 자금 송금 내역 등을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대법원은 C 씨의 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이 금지한 ‘누설’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경찰이 제공한 공식 고발장 서식에 나와 있는 대로 피고발인의 개인정보를 기재한 것이 문제가 됐다. 법률사무소 동행 이현우 변호사는 “이런 경우 검찰이 기소하지 않는 것이 맞고, 기소되더라도 정당행위 등으로 무죄가 선고됐으면 좋았을 것 같다”며 “정당행위와 같은 위법성 조각 사유를 법원이 너무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