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독 간호사 시작은 부산… 독일 한인 1세대 역사 기록” 이경희 한독문화교류협 사무국장
1954년 설립 서독 적십자병원
1960년대 간호사 파견 발판
독일 이주 1세대 삶 기록·연구
후속세대 교육·한국 정착 지원
이경희 한독문화교류협회 사무국장은 “독일 이주 1세대 기록관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파독 간호사의 시작이 부산인 것 아시나요? 한독문화교류협회 사무실을 부산에 둔 이유입니다.”
지난 5월 (사)한독문화교류협회(LIDO-Korea)가 설립됐다. 정문수 한국해양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장, 장용선 독일 코리아재단 대표, 정진성 부산 주재 독일명예영사 등 3명이 발기인이다. 이경희 사무국장으로부터 협회의 설립 목적과 추진 사업 등에 관해 들었다.
“한독 교류의 뿌리는 1954년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 세워진 서독 적십자병원입니다. 그 병원에서 배출한 한국인 간호사들이 1959년 정식 간호 인력으로 독일로 갔어요. 1960년대 간호사들이 대규모로 독일로 가게 된 발판이 됐습니다.”
이 사무국장은 “부산 중구 동광동에 협회 사무실을 둔 또 다른 이유는 부산 독일명예영사관과 사무실을 공유하면서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해서다”고 덧붙였다.
협회 설립 목적은 1960년대 간호사·광부 파견으로 시작된 독일 한인 이주민들의 역사를 바탕으로 양국 문화 소통과 연구 활동을 하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법인은 올해 설립됐지만 활동은 10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한국해양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와 독일 코리아재단, 독일명예영사관이 관련 연구를 꾸준히 하고 한인 이주민들을 지원해 왔다.
“1세대들의 값진 경험이 개인의 기억에만 남아 있습니다. 이를 기록하고 다음 세대와 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독 교류 140주년을 기념해서 1세대, 1.5세대, 2세대들이 각각 느꼈던 이방인의 삶을 담은 책 〈미지의 다양성〉을 냈어요. 내년에는 영상으로 기록해서 영화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주 1세대 기록관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협회는 지난달 대한노인회 독일지회 회원 50명을 초청해 부산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한 어르신은 “28살이던 1970년에 독일에 갔다. 지하 1400m에 지열 45도였던 갱도를 하루 150번 왕복하며 20kg 쇠기둥을 옮겼다.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동료들도 많았다. 귀국에 문제가 생겨 독일에서 발버둥 치며 살았지만 노력하니 희망이 있더라”고 지난날을 이야기했다. 부산해양대, 부산외국어대 학생들이 참석해 이 같은 경험을 듣고 질문하고 공감했다.
현재 회원 수는 120여 명으로 독일 이주 1세대와 자녀, 선교사 유학생들이다. 특히 교육자가 많아 후속세대의 교육에 관심을 쏟고 있다. “국력이 약했던 시절 독일로 이주했던 이들과 공유되는 정서는 이른바 ‘마이너’한 집단들입니다. 부산마이스터고와 탈북민학교인 장대현 학교 학생들, 국내 거주 독일 다문화 가정 학생들에게 멘토가 되어 주고 독일 연수를 지원합니다. 독일을 공부하고 있는 부산외국어대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주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어요.”
이 사무국장은 “재독 한인 1세대들은 대부분 80세가 넘었다”며 “노후를 고국에서 보내고 싶어도 귀국이나 정착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협회는 ‘헬프 데스크’를 만들었다. 이주에 필요한 법률, 예를 들면 독일 시민권을 취득했을 때 한국 국적을 유지할 수 있는지,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등등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쉼터를 운영하면서 단기 체류할 수 있게 하고, 한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연결해 준다. 시니어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부산가톨릭대 하하캠퍼스와도 연계해 주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협회와 독일명예영사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해 정착을 돕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전문 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며 “우리나라 다문화 정책은 동남아나 중앙아시아에만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1세대들은 대부분 고령이라 행정 절차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독일 연금을 수령하려면 매년 생존확인서 등 서류를 내야 합니다. 체류 연장이나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류도 복잡하고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올해는 부산에 서독 적십자병원이 설립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서구 서대신동 옛 부산여고 자리에는 비석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게오르크 슈미트 주한 독일대사가 12월 16일 이곳에서 병원 설립을 기리는 행사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함께 자리할 계획입니다. 우리 역사의 한 부분에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