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 못 이긴 EU, 국방비에 쌈짓돈 푼다
미국, 거듭 군비 인상 압박
EU 경제 불균형 방지 예산
무기 제한 규정 완화하기로
유럽연합(EU)이 기존에 묶어뒀던 경제 불균형 완화 예산을 방위 산업 등에 전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 전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 계속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귀환이 확정되면서 유럽 국가들이 국방에 쓰는 돈을 늘려야 하는 압박이 가중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FT에 따르면 EU는 공동 예산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른바 ‘결속 기금’의 사용처 제한을 완화키로 했다. 이 기금은 회원국 간 경제 불균형 완화를 위한 것으로, 2021년부터 2027년까지 3920억 유로(한화 585조 원)에 이른다. 결속 기금의 계획 대비 예산 집행률은 지금까지 약 5%에 불과했으며, 지원을 가장 많이 받은 폴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는 집행률이 더욱 낮았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이 예산은 국방 장비 구매나 직접적인 군부 지원에 쓰일 수는 없다. 다만 드론 등 이른바 ‘이중 용도 제품’에 대한 투자는 가능하다.
그러나 앞으로 몇 주에 걸쳐 EU 집행위원회는 각 회원국에 새로운 방침을 통보해 이들이 결속 기금을 조금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무기·탄약 생산 증대 등 방위산업 지원에 쓸 수 있게 되며, 탱크가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도로와 교량을 강화하는 군 이동성 확보 방안에도 결속 기금을 쓸 수 있게 된다. 다만 무기와 탄약을 직접 구매하는 데 쓰는 것은 여전히 금지된다.
EU의 이런 정책 변경은 우크라이나전 개전 이래 국방비 지출은 늘려야 하는데 외국 투자가 줄어들어 고통을 겪고 있는 동유럽 회원국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을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만약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 지출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러시아가 뭘 하려고 하든 내버려둘 것”이라고 선거운동 기간에 발언한 바 있다. 특히 폴란드는 EU에 방위비 예산을 늘리도록 압박을 강화해 왔다.
나토 회원국들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 목표치는 2%로 설정돼 있으나 대부분은 이에 미달한다. 폴란드는 올해 GDP의 4.1%를 군에 썼으며, 2025년에는 군비 지출을 GDP 대비 4.7%로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