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무비 스님 전집 발간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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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경전의 우리말 번역, 즉 역경은 조선 세조 때 처음 시작됐다. 세조는 1461년 간경도감을 설치, 〈능엄경 언해〉 등 9종의 언문 불경을 간행했다. 그러나 간경도감은 세조 사후 유명무실해졌고, 성종 때인 1471년 폐지됐다. 역경이 다시 이뤄지기까지는 수백 년이 흘러야 했다. 한암(1876~1951) 스님의 역할이 컸다. “도가 문자에 있는 것은 아니나 글 아는 사람은 일단 경을 봐야 한다”며 선교겸전(禪敎兼全)을 강조했던 한암 스님은 삼본사수련소(三本寺修練所)를 설치해 직접 불경을 가르쳤다.

한암 스님의 가르침을 탄허(1913~1983) 스님이 이어받았다. 삼본사수련소 조교로 있으면서 한암 스님과 연을 맺은 탄허 스님은 ‘1955년 불교 정화운동’의 완성은 승가 교육에 있다고 봤다. “법당 100채 짓기보다 스님들 공부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그의 법문은 유명하다. 교육 과정에서 우리말 교재의 필연성을 절감한 탄허 스님은 1960년 〈육조단경 역해〉를 시작으로 입적할 때까지 한국 불교가 중시하는 소의경전 대부분을 직역·간행했다. 그 양이 18종 78권으로 방대하다. 그중 으뜸은 17년에 걸쳐 완성한 〈신화엄경합론〉 47권이다.

탄허 스님의 교학 당부는 현재 부산 범어사에 주석하고 있는 무비(81) 스님에게 전해졌다. 무비 스님이 탄허 스님과 인연을 맺은 건 1967년 당시 탄허 스님이 강사로 있던 동국역경연수원에 연수생으로 들어가면서였다. 이후 탄허 스님에게 화엄경을 배운 무비 스님은 화엄경 전체를 우리말로 새롭게 펴내고 해석하겠다는 장엄한 원력을 세웠다. 그 원력은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18년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81권 완간으로 마침내 이루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통도사 강주, 범어사 강주,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등을 역임하며 오늘날 대강백으로 불리는 무비 스님의 불경 관련 저서는 120권이 넘는다. 이와 관련해 무비 스님은 “이전 번역서는 한자를 직역해 너무 어려웠다. 현대에 맞게 내 나름대로 번역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 무비 스님의 ‘전집’이 〈화중연화(火中蓮華)〉라는 제목으로 오는 23일 공식 출간된다. 범어사는 이를 기념해 당일 오후 2시 경내 보제루에서 봉정법회를 연다. 화중연화! 불 속처럼 견디기 힘든 고통에서도 연꽃처럼 장엄한 길을 걷는다는 뜻이겠다. 그 뜻이 후학에게도 전해져서, 한암-탄허-무비로 이어진 대강백의 맥이 면면하길 기원한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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