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충·폰딧불이… 언제까지 어두운 극장 속 ‘벌레’로 사시렵니까 [부산을 바꾸는 에티켓]
6. 공연문화
내용 알리는 ‘스포일링’ 잡담에다
휴대폰 문자·통화 주고받기 예사
관객 예절 조기 교육도 해야 할 판
#1. 지난 7월 영화 ‘핸섬가이즈’를 보기 위해 부산의 한 극장을 찾은 서 모(31) 씨. 영화가 막 시작된 상영관에 한 무리의 관객이 다급히 입장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들은 객석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힘들게 자리를 찾아 앉고서는 한 마디 내뱉는다. “얼마 전에 이 영화 봤는데 아주 웃기더라고. 보면 재밌을 거다”. 영화를 미리 감상했다던 N 회차 관람객은 상영 중에 영화와 관련된 내용을 반복해서 지인에게 전달했다. 웃긴 장면에서는 왜 이 장면이 웃긴지를 이야기하고, 행여 내용이 이해되지 않을까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무성영화도 아닌데 변사가 등장하자 서 씨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한 관객이 그들에게 조용히 해 줄 것을 요구하자 대화는 겨우 중단됐다.
#2. 몇 달 전, 입소문 난 예술영화를 보기 위해 한 극장을 찾은 3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불쾌한 경험을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극장 안 객석에서 작은 불빛을 목격한 것. 조그맣게 반짝이던 불빛은 어느새 큰 휴대전화 화면을 가득 채웠고, 관객의 집중력은 누군가가 무심코 연 휴대전화 불빛에 잠식됐다. 이른바 ‘폰딧불이’다. 해당 관객은 다른 사람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새어 나오는 불빛을 가릴 생각도 없이 카카오톡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김 씨는 “어둠과 빛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는 등 영상미가 중요한 영화인데 휴대전화 불빛 때문에 흐름이 깨져 몹시 기분이 안 좋았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관객’과 ‘크리티컬’의 합성어인 ‘관크’는 영화나 연극, 음악 공연 등이 펼쳐지는 공연장에서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동을 일컫는 신조어다. 관람 중 전자기기를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앞좌석을 발로 차는 등 다양한 방식의 ‘관크’가 존재한다.
한 공연 전문 사이트가 2016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6.1%가 관람 방해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 중 ‘공연 중 벨 소리가 울리거나 전화를 받는 행위’(30.6%)가 가장 빈번한 유형으로 지목됐다. 최근 스마트 기기 보급 등으로 공연 관람을 방해하는 수단은 많아지고 있지만 제한된 인력 등의 한계로 관람객의 에티켓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화, 코미디, 연극, 뮤지컬, 음악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 도시’ 부산에서도 일부 민폐 관객으로 인해 공연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연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부산에서 활동 중인 한 공연업계 관계자는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공연 관계자가 무대에 올라 휴대전화 무음 설정 등 공연 중에 지켜야 할 매너를 관객들에게 알려준주곤 한다”며 “대부분의 관객은 지시를 잘 따르지만는데 관객 그중 일부가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가 휴대전화가 울리는 경우 등이 자주 발생한다”고 털어놨다.
관크는 심할 경우 법적 분쟁까지 불거질 수 있다. 지난해 5월 대전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던 40대 남성이 같은 열에 앉은 관객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다 싸움으로 번진 사건이 있었다. 해당 남성은 휴대전화를 쓰던 ‘폰딧불이’ 관객을 폭행했고 지난 1월 대전지법은 남성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22년에는 ‘아바타:물의 길’ 상영관에서 한 관객이 회를 초장에 찍어 먹다 다른 관객의 불만을 사는 ‘초장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공연 에티켓을 지키려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공연 관람 기회 확대, 교육 등의 제도적 접근을 통해 관극 문화를 성숙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공연업계 관계자는 “‘관크’ 문제는 개인의 성향도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평소 공연 관람 기회가 적고 어떻게 공연을 관람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 몰라 발생하는 문제기도 하다”며 “공연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에티켓 교육 등이 정착되면 나아질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