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기장 지역, 금관가야 핵심 축이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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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촌리 고분군 현장 설명회
복천동·연산동과 운명 함께

18일 부산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산36에서 ‘고촌리 고분군 3차 발굴 조사’ 현장 공개 설명회가 열었다. 18일 부산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산36에서 ‘고촌리 고분군 3차 발굴 조사’ 현장 공개 설명회가 열었다.

부산시립박물관이 18일 부산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산36에서 ‘고촌리 고분군 3차 발굴 조사’ 현장 공개 설명회를 열었다. 고촌리 고분군은 운봉산(해발 258.5m) 동쪽 끝, 실로암공원으로 올라가는 도로와 고촌 신도시 사이에 있는 언덕에 위치했다. 구릉지 500㎡의 좁은 조사 구역 안에 목곽묘(木槨墓) 16기, 석곽묘(石槨墓) 12기, 옹관묘(甕棺墓) 8기, 토광묘(土壙墓) 1기 등 총 37기가 있었다. 여러 형태의 무덤이 밀집해서 축조된 모습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줬다.

고촌리 고분군은 1998년 기장군의 문화유적 지표조사 이후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추정했지만, 2021년 부산박물관에 의해 처음으로 정식 발굴 조사가 이뤄진 뒤 가야 고분군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환두대도, 철촉, 곡옥 등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이 500여 점이 넘는다.

부산박물관은 무덤 축조 과정에서 이뤄진 다양한 장송 의례 흔적도 찾아냈다. 무덤 내부에서는 고배(高杯)의 다리 부분을 제거하거나, 잔의 손잡이를 파쇄하는 등 장례 습속에 따라 의도적으로 훼손시켜 부장한 흔적이 발견됐다. 소형 석곽묘에서는 죽은 자의 유해와 영혼을 보호하려는 벽사의 의도로 내부 벽면을 붉게 칠한 흔적이 나왔다. 부산박물관은 삼국시대의 가야 사회가 지녔던 제사 관념의 연구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를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신경철 부산대 고고학과 명예교수가 고촌리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을 들여다 보고 있다. 신경철 부산대 고고학과 명예교수가 고촌리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을 들여다 보고 있다.

보도자료에는 고촌리 고분군의 존재가 1960년대 후반 동래고 향토반 학생들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담겼다. 신경철 부산대 고고학과 명예교수가 대학 재학 시절 모교인 동래고 향토반 학생들과 함께 매주 일요일 고촌리 유적을 답사해 도굴에 의해 마구 뒹굴고 있는 토기편 등을 수습했다는 것이다. 신 명예교수는 <기장사람들> 기고문을 통해 ‘신라 고분군에서는 출토된 적이 없고 금관가야 중추부 집단만이 소유할 수 있는 ‘외절구연고배’가 출토되어 주목했다. 이 당시 수습한 토기 등의 유물은 지금 동래고 역사관에 소장되어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발굴 조사 자문단으로 참석한 신 명예교수는 “고촌리 고분군의 존속 기간은 유적에서 채집된 토기를 근거로 4세기에서 6세기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고촌리 고분군 집단은 금관가야 핵심적인 축이었던 복천동·연산동 고분군 집단과 시종 운명을 함께하는 유일한 집단이 된다. 고대 기장 지역도 금관가야의 핵심 지역이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산박물관 측도 “고촌리 고분군은 부산 지역 가야사 복원의 공백을 메우고 복천동 고분군을 정점으로 하는 산하 집단의 고분군으로 상호연계성을 파악해 금관가야 사회의 위계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고분군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기초자료가 확보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라고 밝혔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고촌리 고분군 3차 발굴 조사’ 현장 모습. ‘고촌리 고분군 3차 발굴 조사’ 현장 모습.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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