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구청 전두환 표지석 38년 만에 철거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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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설치 기념식수 표지석
구청 “국민 정서 고려한 결정”
제주도청 등도 ‘흔적 지우기’

지난 15일 해운대구청이 구청 내 ‘전두환 기념식수 표지석’을 철거하고 있다. 해운대구청 제공 지난 15일 해운대구청이 구청 내 ‘전두환 기념식수 표지석’을 철거하고 있다. 해운대구청 제공

부산 해운대구청에 설치됐던 전두환 씨 부부의 기념식수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이 38년 만에 철거됐다. 제주도청과 대전현충원 등 최근 전국에서 전 씨의 흔적을 잇달아 지우기 시작하면서 역사 기록물을 둘러싼 시민적 합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해운대구청은 지난 15일 청사 내 정원에 설치돼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 표지석을 철거했다고 19일 밝혔다. 해당 표지석은 1987년 전 씨가 구청을 방문할 당시 설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청 측은 전 씨의 기념식수 표지석이 설치된 사실을 확인하고 내부 논의를 거쳐 최종 철거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철거된 표지석은 구청 내부 기록관에 보관될 예정이다.

일부 해운대구민들은 표지석을 두고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운대구 주민 신 모 씨는 “전 씨는 대법원에서 인권유린에 대한 책임이 확정된 이로 표지석을 그대로 둔다면 해운대구에 방문하는 많은 시민과 외국인에게 설명하기 난감할 수밖에 없다”며 “기념비 철거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2020년 제주도청에 설치된 전 씨의 기념식수 표지석도 논의 끝에 철거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선례로 참고했다”며 “시간이 많이 지나 표지석의 글자가 많이 마모됐고 설치 경위 등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해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 씨 흔적은 전국 곳곳에서 사라지고 있다. 제주도청 민원실 앞 공원에 설치돼 있던 전 씨의 기념식수 표지석이 논란 끝에 설치 40년 만인 2020년 철거됐다. 당시 도청 측은 제주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도민 정서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대전현충원의 현충문 현판도 논란 끝에 2020년 교체됐다. 당초 1983년 대전현충원 현충문 현판은 전 씨가 종이 위에 ‘현충문’이라고 쓴 것을 탁본하는 방식으로 제작됐으나 이 사실이 알려지며 교체 여론이 일었다. 최근에는 서울 청담도로공원에 설치된 전 씨의 기념비 논란이 일어나면서 서울시가 철거를 두고 적극 검토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역사의 기록물 유지 여부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하고 관련 선례를 축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이신철 위원장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역사관과 세계관이 반영돼 과거 기념비 등에 대한 철거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니만큼 시민적 합의에 따라 철거는 결정될 수 있다”며 “다만 중요한 것은 과정으로, 논란에 따른 무조건적 철거가 아닌 역사적 연원을 밝히고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나가야 사회에 교육적 효과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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