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임금체불, 근로자 생존권 위협하는 중대범죄
김준휘 부산지방고용노동청장
올해 9월 말 기준 전국 임금체불액은 1조 5000억 원으로 전년동기에 비해 16.6% 증가했다. 임금체불 피해자도 약 21만 명에 이르는 등 역대 최고 수준이다. 부울경 지역의 경우에도 임금체불액 2400억 원, 피해 근로자 3만 3000명으로 임금체불 규모가 지난해에 비해 25.1%나 증가했다. 특히 중소 제조업체가 밀집된 경남 지역에서 부울경 전체 임금체불액의 절반 수준인 1261억 원의 임금체불이 발생(전년 대비 37.9% 증가)해 매우 우려스럽다. 지난 10월 고용노동부 산하 지방고용노동청을 상대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도 그 심각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동안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임금체불을 근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체불임금 미청산 사업주를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법처리 비율이 46%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반복적으로 임금을 상습 체불하는 악덕 사업주에 대해서는 불관용 원칙하에 검찰과 협조하여 올해에만 구속영장 6건, 체포영장 47건을 신청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해 왔으며, 앞으로도 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한 사법처리를 더욱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또, 체불 근로자의 권리 구제를 위해 사업주를 상대로 체불 금품을 신속히 해결하도록 일선 근로감독관들의 적극적인 현장지도 활동과 더불어 경영난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체불 청산이 어려운 사업장의 경우에는 신속히 대지급금과 체불융자지원금을 지급받도록 지원했다. 올해 발생한 체불 금품의 71%에 이르는 1700억 원을 해결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700억 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규모의 체불임금이 청산되지 못하고 있으며 체불로 인해 피해를 본 근로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돈이 없어서 임금을 못 주는데 그게 뭔 큰 죄냐?”라며 조사하는 근로감독관에게 큰소리를 치는 사업주, 체불 근로자가 사업주의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반의사불벌 원칙을 악용한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사업주, 체불했음에도 고의로 출석요구에 불응하거나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등 조사에 비협조적인 사업주들이 적지 않다.
임금체불은 일반적인 채무불이행과는 다르다. 임금채권은 근로자와 그 부양가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재산권이자 생존권의 성격이며, 나아가 임금체불은 근로자 개인이 제공한 노동의 가치가 부정되는 인격권 침해이기도 하다. 임금체불은 노동시장의 기본 규칙을 위반하고, 근로자의 재산권과 생존권, 인격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다.
임금체불 근절 등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법률안이 지난 9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로써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에 대해 △신용제재, 정부 지원 등 제한과 공공 입찰 시 불이익 등 경제적 제재 강화 △사업주의 신속한 체불임금 변제를 위해 피해근로자가 원하면 사업주를 형사처벌하지 않았으나(반의사불벌죄), 2회 이상 형사처벌을 받은 명단 공개 사업주가 다시 임금을 체불하는 경우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음 △상습적인 체불 등으로 손해를 입은 근로자는 법원에 손해배상(3배 이상의 금액) 청구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개정안은 공포 후 1년 후인 2025년 10월 23일부터 시행된다.
부산이 글로벌도시,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한 조건이 다양하겠지만 체불이 없는 도시라고 상상하면 근로자에게 신뢰받는 도시, 구직자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도시가 될 터이다. 따라서 사업주가 회사를 경영하고 싶은 도시가 되어 노사가 상생하는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부산이 임금체불 없는 살기 좋은 도시를 꿈꾸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나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임금체불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