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간절함이 사라진 시대에 영화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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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화평론가

기술 발전 따라 영화 소비 방식 변화
콘텐츠 양산 속 품질 저하 우려
"특별한 선택보다 우발적 재미 따져"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극장에서 개봉 영화를 보거나 시간이 지나 텔레비전에서 보는 방법 정도였다. 주말과 연휴에는 텔레비전 정규 방송에 지난 영화를 몰아 상영하는 시간대가 포함되어 있었고, 많은 시청자들이 이 시간을 고대하며 밀린 영화를 보곤 했다. 명절이나 긴 연휴가 시작되면, 신문에서 편성표를 찾아 밑줄을 치고 같은 시간에 상연되는 영화를 어떻게 다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이후 영화를 재생하는 비디오테이프가 나왔고, 사람들은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밀린 영화를 보곤 했다. 극장에서 개봉 영화를 보고 밀린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보는 방식이 존재했지만, 그 사이에 영화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는 비디오테이프와 그 대여점은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CD나 DVD에 영화를 담는 방법이 나왔고, 사람들은 이러한 콘텐츠를 활용하여 컴퓨터에 영화를 보는 방식을 추가했다. 다시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컴퓨터에 시디나 디브디를 넣는 장치 자체가 사라졌다. 이제는 USB를 통해 파일을 전송하거나 재생하는 방법이 선호되고 있고, 원하는 영화는 인터넷을 통해 시청하거나 관람할 방법도 보편화되고 있다.

OTT 서비스가 시작된 시점은 아마도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서비스가 과연 효과적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점차 안방에서 그리고 거실에서 혹은 자기 침대나 스마트폰에서 영화를 고르고 시청하고 멈추고 때로는 다시 보는 활동은 막을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지난 30~40년 동안, 영화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그만큼 변모해야 했다. ‘시청자’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관객’ 앞에 등장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했다. 그런데 그 고민을 반추하는 심경은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시대가 바뀌고 변화가 엄습하고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했으니 영화 역시 바뀌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영화가 지닌 본질적 의미마저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길이 없기 때문이다.

OTT 세상을 열면 그 안에 온갖 콘텐츠가 들어 있다. 너무 많아서 놀랄 정도이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흘러가듯 본 콘텐츠를 다시 발견하는 즐거움도 생각보다 쏠쏠하다. 하지만 그 많은 콘텐츠가 모두 유용한 것은 아니다. 사소하지만 영화 한 편이라도 작심하고 관람하고, 귀해서 아껴가며 보는 즐거움이 없다. 슬쩍 보고, 대충 살피고, 아니다 싶으면 버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계속 보고 버려도 콘텐츠는 얼마든지 있고, 이것이 아니면 다른 것을 고르면 그만이라는 심리도 한몫 거든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와 콘텐츠의 완성도 역시 예전만 못해 보인다. 쓰고 버리는 상품처럼, 늘 새로운 것을 채워 넣어야 하는 상점처럼, 그렇게 영화와 어느새 미디어 콘텐츠가 된 많은 것들이 거기에 그냥 전시되어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특별한 선택이 아닌 우발적인 재미를 따지게 되었고, 지치고 재미없으면 그만 보는 일을 반복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달갑지 않다. 영화나 콘텐츠가 일회용으로 쓰고 버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만들고 꼼꼼하게 관람하면서, 귀한 콘텐츠를 아껴가며 시청해야 했던 시절의 향수가 살아나는 것도 부인하지 못하겠다. 실제로 급하게 만들고 마구 소모해 버리는 콘텐츠 중에는 다시 돌아볼 만한 것이 드물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상품으로서 영화일 수도 있겠지만, 오래된 삶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은 토요명화의 주제 음악이나 명화극장의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우리를 가벼운 흥분으로 몰아넣던 그 시절의 음악에는 지금보다 영화에 대한 간절함이 더 깊게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영화를 OTT로 찾다가 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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