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당한 영사관 외국인 직원, 당국도 외면
부산 카자흐스탄 전 총영사에
머리 등 맞은 뒤 경찰에 신고
“접수 안 된다” 말만 들어 '분통'
인권위도 “조사 대상 아냐” 손놔
지난해 12월 12일 카자흐스탄 부산 총영사관에서 당시 초대 총영사가 팔을 걷으며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해당 건물 CCTV 캡처
부산 카자흐스탄 전 총영사에게 폭행당한 총영사관 전 계약직 직원이 한국 법원에 민사소송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부산일보 10월 30일 자 2면 등 보도)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수사기관 등 관계당국의 외면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비엔나 협약’을 내세우며 “처벌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법적 조사 대상인 ‘국가기관’에 외국 기관을 포함하기 어렵다고 해석하며 사건 진정을 각하했다.
21일 부산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2일 오후 ‘카자흐스탄 영사관 2층 외국인이 폭행을 당했다’는 경찰 신고가 접수됐다. 동구 초량동 영사관에 출동한 경찰은 총영사에게 머리 등을 맞은 A 씨와 현장에서 면담을 진행했다.
〈부산일보〉가 확보한 당시 녹취록에서 A 씨는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확보를 원했지만, 경찰 2명은 “영사관 직원은 비엔나 협약 때문에 처벌이 안 된다”며 “(신고 기록이나 처리 과정은) 정보 공개로 청구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총영사는 ‘영사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공무 중 행위가 아니면 국내법이 적용되지만, 경찰은 폭행 혐의를 받는 총영사를 형사 입건하지 않았다. 2021년 광주에선 음주 운전으로 적발된 중국 총영사관 영사가 ‘병문안을 다녀왔다’고 면책특권을 주장했을 때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그를 검찰에 송치한 사례가 있다.
A 씨는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13일에도 경찰서를 찾았으나 형사 사건을 접수하지 못했다. 그는 “아무런 종이도 안 줬고, ‘접수가 안 된다’ ‘가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이에 A 씨는 올해 8월 뒤늦게 동부경찰서에 우편으로 고소장을 접수했지만, 경찰은 “피해자가 신고한 날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하며 지난달 ‘반의사불벌죄’를 명목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리며 고소를 각하했다.
지난해 이틀 동안 경찰에 폭행 사건을 접수하지 못한 A 씨는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인권사무소도 찾아갔다. A 씨는 사건 진정을 접수했지만, 인권위는 약 2주가 흐른 지난해 12월 29일 사건을 각하하기로 했다. 인권위가 외국인 인권에도 관심을 확대하고 있지만, 인권위법 30조 1항에 조사 대상인 ‘국가기관’에 외국 기관은 포함하기 어렵다는 명목으로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두 기관에 기대지 못한 A 씨는 결국 인권위가 사건을 각하한 지난해 12월 29일 부산지법에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A 씨는 “명예 회복을 위해 200만 원 정도로 소액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