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김 위판장 가보니 “이래 따신데 김 되겠나? 바다에 얼음 부어야할 판!”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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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낮 12시 부산 강서구 명지동 위판장에서 2025년도 첫 낙동김 위판이 진행됐다. 이날 위판된 김은 340상자(40.8t)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지난 22일 낮 12시 부산 강서구 명지동 위판장에서 2025년도 첫 낙동김 위판이 진행됐다. 이날 위판된 김은 340상자(40.8t)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날씨도 바다도 이래 따신 데 김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돈 벌어서 바다에 얼음 부어야 할 판입니더. 인자 앞으로는 김 나는 게 계속 늦어지는기라예.”

지난 22일 낮 12시 부산 강서구 명지동 어업인복지회관 앞. 이곳 위판장에는 당일 아침 수확한 물김이 120kg 단위로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일렬로 늘어섰다. 2025년도 첫 낙동김 경매를 준비하는 중매인들은 김 조각을 신중히 떼어낸 뒤 길이와 품질을 꼼꼼히 수첩에 적었다. 이맘때 위판장엔 차디찬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게 보통이지만 이날 강서구의 낮 기온은 15도까지 치솟았다.

경매사가 어민 이름과 김의 양을 외친 뒤 호루라기를 ‘삑' 하고 불자 중매인은 원하는 금액을 종이에 적어 제출했다. 이날 준비된 물량 340상자(40.8t)는 중매인 7명이 순식간에 채가며 단 5분 만에 경매가 끝났다. 현장에서 만난 한 어민은 “올해는 수온이 워낙 안 떨어져서 채묘 자체가 늦었다”면서 “김은 수온과 기상에 민감한데 성장 속도나 생산량에 악영향을 미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산 김이 첫 수출액 10억 달러 달성을 앞둔 가운데, 부산 대표 특산물이자 ‘고급 김’의 상징인 낙동김이 지리적 한계와 지원 부족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낙동김의 명맥을 잇기 위해 종자 관리와 어민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2일 낮 12시 부산 강서구 명지동 위판장에서 2025년도 첫 낙동김 위판이 진행됐다. 이날 위판된 김은 340상자(40.8t)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지난 22일 낮 12시 부산 강서구 명지동 위판장에서 2025년도 첫 낙동김 위판이 진행됐다. 이날 위판된 김은 340상자(40.8t)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고수온 더 취약한 부산

부산은 지리적인 특성상 국내 최대 김 생산지인 전남보다 고수온에 특히 더 취약하다. 앞바다에 따뜻한 대마난류가 흘러 수온 상승 폭이 크기 때문이다. 고수온으로 인한 김 생산량 감소는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낙동김이 더 감소 폭이 큰 이유다.

부산 낙동강 하구에서 자라는 낙동김은 국내 김 중에서도 가장 고급 김으로 취급된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 지역인 덕분에 영양염류가 풍부하고 물살이 적당해 예로부터 김을 양식하기 최적의 장소로 꼽혔다. 낙동김은 특히 색깔이 새까맣고 윤기가 흐르며 부드럽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전남 등 다른 지역에서 난 김에 반드시 10~15% 정도 낙동김을 섞어야 부드러워진다. 생산량으로만 보면 낙동김은 전국에서 5%도 되지 않지만 국내 김 업계에서 위상은 훨씬 높다.

이처럼 낙동김을 반드시 섞어야 고급 김으로 인정받다 보니 가격에 ‘프리미엄'도 붙는다. 일반 김보다 최소 10% 정도 더 높은 가격에 형성되어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고급 초밥집에서 김을 활용할 때 낙동김을 매우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김 열풍 탑승 못 할라… “체계적 관리 시급”

올해 국내 김 수출액이 단일 품목 최초로 10억 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10월 말 기준 이미 8억 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런 호황이 부산 경제에도 보탬이 되려면, 체계적인 종자 관리와 어민 지원을 통해 낙동김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낙동김 산업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종자의 체계적 관리다. 현재 낙동김의 종자는 일본이나 전남에서 가져오고 있지만, 영세 어민들은 종자 품질을 제대로 관리하거나 모니터링할 여력이 부족하다. 한 수산 전문가는 “어민들은 종자 연구와 관리 인프라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부산시가 종자 상태 점검과 품질 관리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고수온에 강한 종자 개발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기후 변화로 인한 고수온은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므로, 이에 적합한 품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남은 고수온에 적응한 품종 개발에 성공해 주목받고 있다. 해양수산과학원이 8년간 연구 끝에 개발한 신품종 ‘햇바디 1호’는 올해 전남 위판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하며 성과를 입증했다. 반면, 낙동김은 여전히 외부 종자에 의존하고 있어 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

어자재나 금융 등 어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시수협 오성태 조합장은 “어민들은 김 수확을 2년만 제대로 못 해도 어민들은 빚더미에 앉게 되고 도산할 위험이 크다”면서 “낙동김 산업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정부와 시가 체계적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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