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소유 ‘사천 단종 태실지’ 국가 환수 논란 ‘재점화’
일제 의해 훼손…친일파 무덤 들어서
시민단체 주장에 국가 귀속 논쟁 재점화
환수 방법 찾아야 vs 귀속 근거 부족
사천시 곤명면에 위치한 단종 태실지 모습. 경남도 기념물 제31호로,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의 태를 봉안했던 곳이지만 현재 친일파 최연국의 묘가 들어서 있다. 김현우 기자
경남도 기념물인 사천시 ‘단종 태실지’의 소유권이 친일파에게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를 국가로 귀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지역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24일 사천시 등에 따르면 사천시 곤명면에 위치한 단종 태실지는 경남도 기념물 제31호로,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의 태를 봉안했던 곳이다. 태는 태반이나 탯줄과 같이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 왕조는 도교사상과 풍수지리설에 따라 왕과 왕비, 대군, 왕세자, 왕자, 왕세손, 왕손, 공주, 옹주 등이 출산하면 그 태를 항아리에 담아 태실에 묻었다.
하지만 단종 태실지는 일제강점기는 1929년 조선총독부에 훼손됐다. 태실은 부서졌고, 항아리는 경기도 양주로 옮겨졌다. 또한 일제는 단종 태실지 소유권은 당시 사천 지역 유지였던 최연국에게 팔았고, 현재 태실지에는 그의 무덤이 들어서 있다.
최연국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 정부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의해 친일파로 등재된 인물이다. 이에 따라 2009년 친일재산환수조사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단종 태실지 환수를 검토했지만 최종 부적합 결론을 내렸다.
최근 충북 지역 시민단체가 친일파 민영휘와 최연국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태실지 귀속 논쟁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김현우 기자
최연국은 1933년 조선총독부 참의가 된 이후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벌여 왔다. 그런데 태실지를 사들인 건 1929년으로, 재산형성 시점과 친일 행위의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찾지 못했다.
이후 단종 태실지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는데, 20일 충북 지역 시민단체가 친일파 민영휘와 최연국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태실지 귀속 논쟁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사천 지역 정치권·시민단체 등은 충북 지역 시민단체 주장에 발맞춰 재차 단종 태실지 국가 귀속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서연 사천시의원은 “사천시의회에서도 단종 태실지를 환수하자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왔고,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와 논의 중이다. 지역에는 태실지 관련해서 연구를 한 학자들도 많이 있다. 다 같이 머리를 맞대 환수하는 방법을 찾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천시는 다소 미온적인 반응이다. 과거 단종 태실지에 역사교육관을 세우기 위해 최연국 후손과 접촉했지만, 당시 묘지 이장을 거절당했고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이미 친일재산환수조사위로부터 ‘귀속 부적합’ 결론이 난 만큼 당장 손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최연국이 친일파로 등재된 상태긴 하지만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강제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재산을 환수하려면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과거 귀속 부적합 지역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다시 지자체가 개입할 근거가 없다. 최연국이 친일파는 맞지만, 단종 태실지가 환수해야 할 땅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